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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2

시하눅빌

by nelly park

간밤에 잠을 설쳤다. 얇은 매트리스라 허리도 아프고 방 문이 제대로 안 닫혀서 모기들의 뷔페 파티에 다녀왔다. 수영장 근처에 파티가 열렸었는지 밤새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한몫 했지만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어찌나 코를 골던지. 머리맡에서 돌아가던 작은 선풍기는 어찌나 탈탈거리던지. 하룻밤에 2불인 방은 역시 다 이유가 있었다. 더 이상은 잠이 안 와 밖으로 나가려고 좁은 내 자리에서 기어서 나와서 보니 나 빼고 다른 서양 여행자들은 잠을 잘도 잔다. 2층에 서양 여자들은 팬티만 입고 아주 잘 잔다.


숙소 방안과 밖은 너무 차이가 심했다. 밖은 말 그대로 유토피아였다. 따뜻한 햇살이 새파란 수영장을 비추고 식당들은 아직 문을 안 열었지만 아침장사 준비에 분주하고 어제 밤에 파티의 여흥이 끝나지 않은 듯 몇몇은 수영장 근처의 소파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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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서 수영장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등에 타투를 새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러진 못하고 샤워실에 가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늘 밑에 따뜻한 간신히 햇살이 닿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시간 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배가 고파져 이제 막 문을 연 숙소 식당에서 샌드위치와 망고 셰이크를 시켜서 아침도 간단하게 먹었다.


그러니 데이빗이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온다.


“잘잤어?”


“뭐 그럭저럭”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2불 내고 잠만 자고 여기서 생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시하눅빌에 있을 동안은 여기에 머물기로 했다.


데이빗과 소파에 누워 있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져 해변 마을에 왔는데 그래도 한번 둘러나 보자 하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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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휴양지라 그런지 여행자들도 많고 깨끗하게 잘 정돈 되어 있었다. 역시 동양인 여행자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들은 다 시엠립만 보고 가나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다가 나왔다. 역시 동남아시아의 바다란. 투명한 에메랄드 빛깔이다. 사람도 많이 없고 한가롭다. 기념품들을 목에 걸고 파는 꼬마 상인들과 인사도 하고 천천히 걸어봤다. 여행을 끝나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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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크고 몸이 좋은 미국인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 커플이 이 해변을 걷다 선글라스 가판대를 목에 걸고 있는 꼬마 상인이


‘5달러 5달러’


하고 외치며 필요 없다고 해도 자꾸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힘도 과시할 겸 꼬마 상인을 들어서 눈을 노려 보고 안 산다고 말했다. 그래도 꼬마는 무서워하거나 당황한 기색 없이 흑인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땅에 내려오자 마자 바닥에서 무언가를 찾더라고 한다. 그러더니 주위에 있는 어른 상인들이 꼬마아이와 커플을 떼어놓으며 얼른 가라고 한다. 알고 보니 꼬마아이는 남자를 찌를 뾰족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이전에도 몇 번 사고가 일어나서 시하눅빌 해변의 소문이 안 좋아질까 봐 어른 상인들이 흑인 남자가 아닌 꼬마아이를 말렸던 것이다. 다행히 나는 웃으면서 꼬마아이에게 지금 돈이 없다고 주머니를 보여줬었다. 그러더니 오케이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져 다시 숙소로 가서 방갈로 그늘 밑에 누워 시원한 맥주 한잔 했다. 수영장에서 한가롭게 수영하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타투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또 밤이 깊어 오고 여행자들이 하나 둘씩 각자 자리를 잡고 밥도 먹고 맥주도 한잔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게스트하우스는 카페에서 분위기 있는 술집으로 변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여행을 꽤 오래 한듯한 남자 둘이서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서 흔쾌히 의자를 내어 주었다.


그 남자 둘은 이스라엘 여행자들이었다. 캄보디아에만 5개월째 누워있단다. 그만큼 히피들에게 여기만한 곳은 없는 것 같다. 내일은 꼬롱이라는 섬으로 가서 또 한달 정도 있을 거란다. 나는 아쉽지만 바다에 어차피 못 들어가니 여기에 있기로 했다. 그러다 취기가 오르고 나는 약간은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 친구들은 웃으면서 얘기한다.


“우리는 잘 몰라. 정부가 하는 일이지.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났고 정부가 나라를 지켜야 하니까 우리도 군대를 가는 거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싫어하고 하지는 않아”


대부분의 이스라엘 여행자들은 똑같이 이야기한다. 잘 모른다고. 카타르에서 일할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와서 우리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서 우리는 쫓겨난 거지”


여행하다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옳다 그르다 말할 처지가 아닌 것 같아 그렇구나 하고 그냥 넘겼다.


아무튼 이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게 해결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먹을 곳 마실 곳 잘 곳이 다 있으니 밖으로 나가기 싫어지는 것 같다. 잘 곳은 2불. 밥은 한끼에 1불 50정도. 그래서 3끼에 5불 정도. 생맥주 한잔에 50센트. 하루에 단 돈 만원이면 모든 게 해결이 된다. 진짜 말 그대로 유토피아다.


캄보디아는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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