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숙소에서 나와 메콩강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주욱 걸어갔다. 그러니 큰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허름한 슈퍼마켓이 나온다.
‘여기라고?’
빌랄을 따라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가니 라오스인 남자가 누워서 노트북으로 영화 같은 것을 보고 있다. 우리가 온 건 신경도 안쓰는 듯했다. 그 남자를 지나쳐 더 구석으로 들어가니 곧 돌아가실 것 같은 80살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앉아 계신다.
‘이 할머니가 딜러라고?’
빌랄이랑 뭔가 눈빛과 손짓으로 얘기하더니 할머니는 조그만 봉지를 건네고 빌랄은 돈을 준다. 신기하다. 그리고 땡큐하고 나가려는데 할머니는 우리를 불러 세운다. 우리가 뒤를 돌아보니 해맑은 얼굴로 말한다.
“헤로인?”
우리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저으며 나왔다. 충격적이다. 저런 할머니가 여기의 대모구나. 그렇게 신기한 경험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좀 앉아 있다 알렉스와 작별의 포옹을 하고 알렉스도 떠났다. 그리고 어제 같이 비를 맞았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떠난다. 아직 한참 더 여기 있을 빌랄과 나만 남았다. 이제 내 차례다.
오늘 밤에 떠나는데 아직 야시장을 못 가봤다. 오늘은 무조건 가야한다. 130불을 바꿔왔는데 아직 50불 넘게 남았다. 오늘 숙소비 하루치를 더 내고 공항 가는 택시 돈도 내고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맥주도 마시고 싶은 마시고 할 거 다했는데도 아직 돈이 남았다. 쇼핑하면서 억지로라도 다 써야겠다.
야시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또 다시 비가 온다. 비 따윈 이제 나를 막을 순 없다. 오늘 안 가면 남은 라오스돈도 다 못쓰고 (라오스돈은 은행가서도 다시 안 바꿔준다.) 야시장 구경도 못하고 이제 아무도 없는데 심심하고 이런저런 많은 이유 때문에 비를 뚫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시장의 규모는 생각보다는 작았다. 예전에 갔던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이 인상 깊었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많고 규모도 컸다. 수도인 비엔티안은 더 어마어마하겠지하고 갔지만 착각이었다. 여행자인 내가 살 옷이나 소품들보다는 현지 마켓에 가까웠다. 일용품이나 현지인들이 살 만한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돈을 다 써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비를 맞으며 돌아다녔다.
라오스 스타일의 가방을 파는 가게를 찾았다. 얼른 사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눈으로 골라서 적당히 흥정해서 가방 두개를 샀다. 그리고 조금 가다 보니 예쁜 그림을 판다. 이것도 대충 흥정해서 그림 세 장을 샀다. 그래도 돈이 남아 좀 더 돌아다니다 코코넛 나무로 만든 스탠드도 두 개 샀다. 돈을 거의 다 썼다. 성공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배가 고파 숙소 근처에 허름한 식당에 앉아 대충 커리 볶음밥을 시켰다. 역시 여행을 가도 맛집이나 먹는 거에 신경 안쓰는 나답게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식사도 그냥 아무거나 보이는 곳에서 먹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 갈 시간이다. 짧은 휴가 였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맡는 동남아 특유의 냄새가 좋았고 사람들의 미소가 좋았다. 짐을 챙겨 내려와 예약해놓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역시 아쉽다. 그리고 역시 아쉬울 때 떠나는 거다.
다음에 또 올게. 안녕 라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