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쩨
크라쩨는 일출도 장관이다. 아침에는 바람도 꽤 선선하다. 어제 그 찌는 듯한 날씨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쾌적하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해가 떠오르면서 다시 공기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기 시작한다. 일단은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좀 쉬다 오늘은 숙소에서 강 건너 보이는 섬을 보러 가기로 했다.
어제 맥주 한잔 했던 분위기 좋은 바 바로 앞에 보트 선착장이 있다. 강가 쪽으로 계단을 내려가니 꽤 큰 크기의 보트에 사람들이 타고 있다. 우리도 올라탔다. 이 보트는 관광용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섬과 육지를 오고 가는 수단인 것 같다. 외국인은 우리밖에 없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또 내 머리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다행히 돈 걷는 캄보디아 아가씨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 보트비는 2000리엘 (50센트) 이란다.
보트가 서서히 출발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10분 정도 지나니 도착한다. 보트에 올라타 매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배 위에 올라 뒤로 보이는 강물과 멀리보이는 육지를 배경으로 강조하고 싶었지만 매트는 어떤 느낌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지 전혀 감을 못잡는듯 하다. 여기서 느낀점
서양인과 같이 여행하면 좋은점.
전세계 모든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한중일 빼고. 한중일 사람들은 자기나라 사람들과 여행하는 경향이 있다)
쿨하다. 그리고 계산이 깔끔하다.
서양인과 같이 여행하면 안 좋은점.
사진을 못 찍는다. 어떤 느낌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지 전혀 감을 못잡는 듯 하다.
섬에 내려 모래 사장 한가운데 나 있는 나무 판자길을 밟으며 주욱 걸어갔다. 햇빛에 달구어진 모래는 너무 뜨겁다. 조리를 신은 발이 모래에 잠기면 뜨거워 팔짝팔짝 뛰며 걸었다. 일단 길을 따라 언덕으로 좀 올라가니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나온다. 여기는 섬이라 그런지 자전거 빌리는데도 육지보다 두배나 비싸다. 잠깐 섬만 둘러볼껀데 2불이란다.
여기까지 왔으니 할 수 없이 2불 주고 자전거를 빌려 길이 나있는데로 페달을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이 섬은 관광목적으로 개발한 곳이 아닐텐데 길이 너무 이쁘다. 라오스의 시골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중간중간에 자전거를 세워 사진도 찍고 잠깐씩 쉬면서 물도 마셔가며 이 아름다운 섬을 즐겼다. 좀 가다보니 나무로 된 고급스러운 건물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가보니 수영장도 있다. 이런 시골 섬에 이렇게 고급스러운 호텔이 있다니 놀랍다.
물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매트는 여기서 좀 쉬어 가자고 한다. 일단 수영장 옆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육지보다 맥주가 두배는 비싸지만 맥주도 하나씩 시켰다. 그래봤자 한병에 2불. 나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맥주를 즐기고 매트와 지원이는 바로 수영장 물로 뛰어 들어간다. 땀도 많이 흘린데다 시원한 바람에 맥주까지 마시니 노곤노곤하다. 의자에 기대앉아 잠깐 눈을 감는다는게 잠이 들어버렸다. 30분쯤 자고 일어났나. 정말 꿀맛 같은 낮잠을 잤다. 푹 쉬었으니 다시 자전거 폐달을 밟아 섬 구경을 마치고 육지로 가는 보트에 올라탔다. 섬으로 들어 올 때는 분명히 2000리엘이었는데 육지로 나갈때는 1000리엘 이란다. 왜 갈 때는 반값일까 궁금해진다.
내일 시엠립으로 가기 위해 티켓을 예약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보트타러 오는 길에 봐뒀던 여행사에 가서 미니벤을 예약했다. 가격은 15불. 역시나 ‘big VIP 미니벤’이란다. 뭐 믿기는 어렵지만 내일 아침 7시까지 여행사 앞 픽업이다.
땀도 많이 흘리고 피곤하기도 하고 이제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맥주 한잔을 시켜서 테이블에 앉아 강위로 떨어지는 장관의 일출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날이 어두워지니 다른 게스트들이 꽤 들어온다. 신기하게도 다 영국인들이다. 맥주와 함께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각자 여행 이야기를 하는데 옆에 앉은 영국 남자애가 유독 시끄럽다. 여행 주제가 뭐든 어느나라 여행 얘기를 하던 자기 아프리카 여행, 러시아여행에서 고생한 자랑만 한다. 난 여행꼰대가 한국이나 아시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행꼰대는 전 세계 어딜가나 있구나.
별로 재미도 없고 듣기도 싫어서 샤워나 하고 자려고 방으로 가니 매트가 누워 있다.
“벌써 자려고?”
매트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쟤 하는 말 듣기 싫어서 그냥 방에 왔어”
하고 같이 한참 웃었다. 똑같이 느끼고 있었구나.
내일은 시엠립. 드디어 문명 생활을 좀 하겠구나. 에어컨 방에서 자겠구나.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