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비둘기가 보도블럭 틈새를 부리로 쪼는 모습을 보며...
오늘은 도심에 볼일을 보러 외출할 일정이 있었다. 아이 등교도 하기 전부터 서울 사는 지인인 언니가 본인 경기 소재 중학교 수업 가는 길이라며 깨톡으로 말을 걸어와서 채팅을 한참 하느라 예상보다 외출 준비가 늦어졌고 결국 늦은 오전에서야 집을 나섰다.
뚜벅족인 나. 목적지 경로를 검색하니 버스로 중간에 환승을 한 번 해야 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중간 환승 정류장에서 마냥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눈 앞에 비둘기가 나타났다. 보통 지하철역 근처의 비둘기들은 몸집이 대부분 영계만 하게 토실토실한데, 오늘 내 눈 앞에 보이는 녀석은 홀쭉했다. 바닥에 살 한 톨, 빵 부스러기라도 있을까 보도블럭 틈새를 부리로 쪼아가며 이리저리 살피면서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다. 정류장으로 사람들이 몰려와도 도통 날 힘이 없는지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뒤뚱뒤뚱 움직였다.
나는 가방 속에 분명 아무것도 없는 줄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과자부스러기라도 있는지 얼른 가방 안을 살폈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있다고 해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용기는 없을 터, 괜히 서글퍼져서 비둘기에게서 시선을 뗐다. 한참 후 돌아보니 비둘기는 이미 떠났다.
두번째 버스를 타고 목적지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여느 때처럼 뚜벅뚜벅 걸었다. 그런데 오늘 나의 발걸음은 일정한 소리를 냈다. 또각또각... 도심 패션이 따로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도심에 갈 때는 구두라도 신어서 기분 전환을 하곤 한다. 오늘도 운동화 대신 3cm굽의 앵클부츠를 신고 나왔다. 나의 걸음걸이에 맞춰 들려오는 또각이는 소리가 기분을 산뜻하게 해주었다. 뚜벅이여서 먼 길 돌아오는 수고로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돌아오는 길은 전철 탄 후 버스 환승으로 경로를 바꾸어 이동해봤다. 삶과 글 모두 자꾸 틀을 깨야 하는 연습이 필요한 내게 오늘의 숙제를 마친 듯 뿌듯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