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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네 Dec 10. 2023

구름 따라 마음도 마사지가 필요하다

[올레 10] 17코스 '태양이 구름에 가려졌다'

올레 걷기 축제가 끝나고 다시 혼자 걷기 시작했다.

어제는 행복과 평온의 차이를 혼자서 정의했고, 오늘은 사람과 비행기로 북적이는 제주 도심 속 올레 17코스를 걷기로 했다.


5시간의 여정은 '근심마저 사라진다는 무수천'에서 시작됐다. 현실 세계를 마주하기 전 내륙 코스의 감동을 잊지 말라고 부탁이라도 하듯 무수천 산책길은 멋짐을 넘어 신비로웠다. 어디서 자라났는지 모를 덩굴잎들이 옆 나무의 기둥을 꽁꽁 둘러싸 추위로부터 보호해주고 있었고, 키 큰 나무들은 작은 덩굴들에게 그늘로 보답하고 있었다. 그 어느 나무도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견고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위에서 아래까지 연결된 나무들을 보며,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무수천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이렇게 신비로운 자연 한가운데 서 있으니 내 마음을 헤집는 불안함은 나의 예민함이 만들어낸 작은 부산물일 뿐이었다.

나무인지 어묵꼬치인지, 너무 너무 신비한 무수천

이호테우해변을 지나 도두봉에 올라오니 활주로에서 이륙 순서를 기다리는 비행기들이 보였다. 며칠 전 제주도를 올 때가 생각났다. 이륙 순서가 3번째이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기내 안내 방송을 듣고 속으로 구시렁대던 내가 떠올랐다. 순리대로 가는 건데 그날도 나는 왜 그리 예민했을까. '이러니 평온하지 못하지.' 그새를 못 참고 또 구시렁대다가 오늘만큼은 비행기 소리에도, 내 불평 소리에도 예민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아직 순서를 기다리던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활주로를 바라보았다.



공항 뒤로 펼쳐진 용담 해안도로에서는 풍경보다 사람 구경을 많이 했다. 무지개 블록마다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을 맞추며 칭찬을 기대하는 꼬마 친구, 해안을 배경으로 k-pop 추는 영상을 찍는데 틀려서 계속 찍는 외국 소녀들, 모두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만큼 꼭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보였다.


"오늘 날씨만 좋았더라면... 해가 없어 ㅠ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신 분들이 흐린 먹구름에 아쉬워하셨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 올레 길을 걷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태양이 안 보이는 하늘이었다.

그래도 아주 잠깐 희끗희끗 해가 보였다. 즉, 해는 있었다. 다만 구름이 가린 것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구름과 태양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오늘은 구름이 이긴 건가?'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은 항상 빛나고 있다. 이렇게 거대한 태양을 오늘은 구름이 이겨 몇몇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니. 그런데 그런 구름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 보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증기가 뭉친 것일 뿐이라는 게 너무 당황스러워 웃음이 났다. 한낮 수증기가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을 이겼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이면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 물방울도 모이면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을 이길 만큼 힘을 가진다는 게 놀라웠다. 순간 나의 불안과 평온의 관계도 비슷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태양처럼 아무리 밝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더라도 작은 수증기의 불안들이 쌓이면 불안이 평온한 내 마음을 장악하겠구나.' 또 반대로 구름이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긍정적인 존재라고 생각해 보았다.

'아주 작은 노력들이 모이고 모이면 그 어떤 무더위도 이겨낼 시원한 평온함을 누릴 수 있겠구나.'


용연 다리, 무려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을 가린 한낮 수증기들

어제, 평온은 내가 나에게 스스로 주는 선물이라고 정의 내렸었다.

오늘은, 그 선물은 특별한 날에만 주는 것이 아닌 매일 하는 습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름 사이를 뚫고 한가로이 날아가는 비행기가 보였다. 며칠 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평온할 그날을 기다리며 평온하지 못한 삶을 버티는 나 자신이 상상되었다.


어느새 걸은 지 4시간이 넘었다. 계속 움직인 다리를 스트레칭 해줘야 될 시간이었다. 그런데 24/7 일하고 있는 마음이야 말로 매일 스트레칭과 마사지가 필요한 것 같았다. 마음 마사지는 어떻게 해줘야 할까? 몸과 함께 마음 스트레칭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듯이, 마음도 쭉 펴주기. (바이브 어플에 15분짜리 무료 긍정확언 오디오를 찾았다!)

퇴근하고 샤워로 몸을 씻어낼 때, 마음도 문질러주며 시원하게 씻어주기.

근육을 풀어주듯이, 마음이 아프면 무시했다가 제주도까지 오지 말고 일단 잠깐 풀어주기.

도로 위 블랙홀은 피해서 걸어가듯이, 마음이 안 좋아할 것 같은 상황은 괜찮으니까 피하기.

헬스장을 가면 운동을 열심히 하듯이, 마음이 평온해 보이는 사람들 주변에 다가가기. (회사에서 제일 평온한 사람을 찾으려고 생각했지만 쉽지가 않다...)

30분 동안 앉아 마음 스트레칭 방법 몇 가지를 적어보니 벌써 마음이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붙잡고 17코스 대표 관광지 용두암과 용연다리에서 2024년 용띠해 기념으로 지금 만큼만의 평온함을 기도했다.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기다리는 신호등에서 택시를 못 잡아 불평불만하는 아저씨들을 마주했다. 언성이 높아질수록 괜히 조용했던 내 마음도 살짝 요동치기 시작했다. 좀 더 걸어 돌아가더라도 다음 신호등을 건너기로 하고 얼른 상황을 피했다.


'평온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가만히 있는다고 찾아오는 건 아니구나.'


꾸준히 마음 마사지를 해주다 보면 그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 시원한 평온 구름 속에 누울 생각을 하니 오늘 하루는 벌써 평온해진다! 얼른 서울로 올라가 힘든 날 마음 마사지를 시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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