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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Oct 18. 2022

블랙 클라우드 보존의 법칙

나의 고충의 양은 정해져 있다

온 우주가 알고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 불행의 정량도 정해져 있는 게 아닐 까.


나는 인턴, 레지던트, 그리고 펠로우 과정 수료 중에 블랙 클라우드(black cloud: 운이 나쁘다는 의미, 병원엔 환자 수와 긴급한 환자 수를 늘려준다. 본인의 고충은 말로 할 수 없다.)로 유명했다. 밤에 당직을 설 때면 끊임없이 입원환자가 들이닥쳤다. 병원에서 제일 오래 일한 간호사나 호흡기 치료사도 병원 역사상 제일 바쁜 날이었다고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한 번은 어찌나 바쁜지 환자가 누군지도 왜 입원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다만 각 환자에게 필요한 시술을 계속하고 있었다. 시술을 하는 도중에, 교수님이 들어와 다른 아기가 입원했다고, 저 방에 가서 또 다른 시술을 하라고 알려주고는 사라졌다. 밤새 누군지도 모르는 아기의 몸에 각종 시술을 다 마쳤다. 다음날 아침, 동료 펠로우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밤이 끝없는 은하수처럼 이어져 당직실에 들어가거나 침대에 누운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 수많은 당직 밤 중에서 잠을 잔 횟수를 손으로 꼽을 수 있다니, 참 슬프고도 기가 막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시커먼 운명은 대학교 때부터였다. 대학생 시절에 응급실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또 의사가 일하는 것을 따라다니며 배우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응급의학과 의사를 쫓아다니며 최대한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배움을 얻고 있었다. 갑자기 응급실 문이 여느 때 없이 활짝 열렸고 덩치가 산만한 최소 150킬로는 될 것 같은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그 몸의 크기로 그렇게 빨리 걸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만큼 급박한 걸음이었다. 마구 소리를 지르며 보이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의사와 나는 발 빠르게 다가갔고 간호사 한 명도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어디가 많이 아파요?"

그녀는 순식간의 말을 뱉었다.

"아기가 나오고 있어요!"

우리는 말을 잃었다.

커다란 쌀 포대 같은 베이지색 바지를 내리고 보니, 아기 머리가 엄마의 아랫도리에 끼어있었다.

우리는 아기를 얼른 받아냈고 산부인과를 호출했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했고, 순식간에 산부인과와 소아과로 입원시켜 응급실에서 내보낼 수 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 까. 이번에는 깡마른 여자가 앰뷸런스에 실러 도착했다. 긴 사이렌 소리를 끝으로 응급실 문이 또 활짝 열렸다. 응급대원들이 빠르게 운송해 여자를 환자 침대에 내려놨다. 의사와 나도 그 방에 들어가 문진을 시작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배가 너무 아파요, 아무래도 아기가 나오려나 봐요."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해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중요한 말인지라 정확히 들렸다. 하나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응급실에서 아기를 받은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빛의 속도로 산부인과를 호출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호출을 받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하지만 아기가 그 산부인과 의사보다 빨랐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달려오던 속도를 늦췄다고 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나를 보며 물었다.

"이런 일이 이 응급실에서 언제 있었는지 알아?"

"저야 모르죠, 자주 있는 일인가요?"

"오늘이 이 병원 열고 나서 최초야. 이 병원 150년 된 건 알지?"

"아... 네..."

나는 얼이 빠진 얼굴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난 눈치를 챘어야 했다. 끝없는 블랙 클라우드의 저주를. 알았으면 의대를 가지 않았을까.

둘째 아이를 낳고 넉 달 동안 꿈만 같던 육아휴가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쉬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턴 시절 낳은 첫째 아이는 4주 휴가 뒤에 바로 복귀했다. 수련의 과정 중 틈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 제때 졸업하기 위함이었다. 꼬박 네 달 동안 환자는커녕 논문 한번 보지 않았다. 병원에 다시 가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다. 네 달 동안 아기만 안은 내 손이 시술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을지, 조금 둔해진 두뇌가 다시 돌아가 줄지 염려가 되었다.


아마도 온 우주는 나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당직 서는 첫날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도무지 사라지질 않았다. 인계를 받는 중, 24주 초 미숙아지만 상태가 좋아서 다음 날 아침 기도삽관 튜브를 빼고 인공호흡기를 중단해도 좋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상태가 좋다던 아기가 새벽 3 시 급작스럽게 아프기 시작했다. 전혀 움직이질 않고 혈압 산소포화도 심장박동수 모두가 문제였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와 처치를 했지만 아기는 살릴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밤마다 멀쩡하던 아기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네 달 동안 내가 맞아야 할 비가 응집되어 있다가 폭우로 쏟아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 먹구름의 기운이 이 정도로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온 우주는 나의 고충을 저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날 아침이었다. 무시무시한 당직을 또 마치고 집에 가는 길, 핸드폰이 또 울렸다. 나의 멘토이자 동료, 지금은 과장님으로 승진한 나의 친구였다.

"네가 당직 선 뒤에 당직실엔 침대 시트가 각 맞춰 그대로 있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렇다. 내가 떠난 당직실은 아마도 청소하는 사람들의 꿈일 것이다. 손가락 하나 닿지 않은 침대, 갈지 않아도 되는 침대 시트와 베갯잇. 아마도 지난 24시간 동안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을 깨끗한 당직실.

또 당직을 마치고 아침에 피곤에 절어있는 나를 보고 그는 누차 말했다.

"우주는 네가 감당할 수 있음을 아니까 그렇게 아픈 아기들을 주는 거야. 네가 할 수 있으니까. 난 그런 적이 없어."

그 우주 어디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

그 감당 이제 하고 싶지 않다고요.


(불평하려고 쓴 글인데 저의 귀염둥이 아가 사진을 올린 기쁨에 젖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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