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하기 위해 준비할 것들- 5
notice.
파트 2 때 작성하다가 완성하지 못한 글입니다.
순서가 크게 상관은 없지만, 원래 작성 목적이 파트 2에 성격이 맞는 글이라 소제목을 파트 2로 달았습니다.
어느덧 파트 2의 마지막 글이다. 파트 2에서는 무슨 디자인을 할지, 내 고객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나 자신을 알릴지 등 독립을 위한 준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사실 여기까지 진행했다면 이제 1인 디자인 기업가로,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로의 물리적인 준비는 끝난 것이다.
하드웨어는 준비됐으니 이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차례다.
바로 디자인 전문가로써의 마인드를 세팅하는 것.
직장에서 일하던 마인드로 독립해서 일한다면 적응이 힘들것이다. 후임도 없고 사수도 없고 위로해주던 동기들도 없는 정글 같은 곳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데, 자신 있는가?
혼자 1인 디자인 기업을 꾸려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첫 번째,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출근하지 않는 디자이너라는 글을 처음부터 봐왔던 독자들이라면 느꼈겠지만 난 프리랜서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1인 디자인 기업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썼다.
막중한 책임감과 신의를 갖고 일하자는 의미다. 단순히 결과물만 찍어내는 공장형 디자이너가 아닌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디자인 전문기업처럼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어원은 용병이다. 돈을 받고 긴 창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 돈준 사람이 죽이라는 적을 죽인다. 적이 돈을 더 준다면 창의 방향이 바뀐다. 1인 디자인 기업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면 계약서에 습관처럼 등장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신의성실'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
일을 수주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일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무겁게 받아들이자. 내가 못하면 내 동료가 해주던 회사 시스템이 아니다. 반드시 내가 책임져야 한다.
일을 의뢰받을 때 몇 번인가 이런 적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잠수를 탔어요.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디자이너를 얼마나 괴롭혔으면 잠적까지 할까 라고 생각했지만, 몇 번 정도 비슷한 케이스로 의뢰받는 일이 반복되니 생각보다 책임감 없이 일을 대하는 디자이너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일을 하다 보면 고객과의 협의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곤 하는데, 대부분 수정 과정에서 겪게 된다. 수정과정에서 고객과 많이 다투고 일도 엎어지고 하는 케이스도 많이 봤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수정은 2번만 가능하다는 식의 사전 계약을 하기도 하는데, 2번의 범위가 너무 모호하지 않은가? 100페이지 제안서를 디자인하는데 2번 수정이라는 걸 빌미 삼아 2번의 통 리디자인을 원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는 나 나름대로의 작업 원칙이 있다. 수정은 고객이 그만 할 때까지. 이것도 일종의 책임감에 대한 문제인데, 난 애초에 계약할 때부터 수정을 감안해서 견적가를 책정한다. 물론 계약서에 명시가 되지는 않겠지만, 수정에 관해 물어보면 '만족하실 때까지 무한 수정이 원칙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부터 난 호감을 얻고 시작하는 것이다.
견적서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수정 비용을 명시할 수는 없다. 다만 내 마인드 세팅을 작업비용+수정 비용=견적가로 해놓으면 스트레스를 조금 덜 받을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책임감의 일정 부분은 견적가에서 나오는 것이니 잘 생각해서 견적을 만들자.
두 번째, 과정을 중요시 여긴다.
'나는 1인 기업가다(세종서적)'를 쓴 홍순성(홍스랩) 대표님과 팟캐스트 녹음을 마치고 이야기를 하던 중 이런 말이 나왔다.
'직장인으로서 회사에서 일할 때는 똑똑하던 사람들이 회사를 나와 독립하면 갑자기 헤매더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간단한 일을 하더라도 프로세스를 지키고 효율성을 따져가며 빠릿빠릿하게 일하던 사람들도 창업만 하면 실수에 실수를 연발한다. 회사 다닐 때 당연하게 해야 했던 일들도 무슨 자신감인지 건너뛰거나 생략한다. 그러다 보면 쓸데없는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그만큼 사업의 안정화도 더뎌진다. 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하며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에 우울증까지 걸리기도 한다.
모든 일에는 일의 순서가 있다. 회사들이 괜히 비용과 시간, 인력을 써가며 절차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 회사들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만들어둔 것이 업무 매뉴얼이고 일의 순서인 것이다.
난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실제 디자인이나 영상을 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나마 기획안을 작성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부터 이렇게 일해왔는데, 고객이 보기에 좋고 싫고를 떠나서 프로젝트의 콘셉트와 키 메시지 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그려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디자인이나 콘셉트의 일관성을 갖고 끝까지 진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대부분의 고객들은 디자이너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하고 간섭하고 싶어 한다. 그런 욕구를 단지 '디자인은 내 영역이다.'라는 이유로 막을 생각만 하지 말고, 일의 프로세스별로 고객에게 보고 할만한 일정을 만들자.
나 같은 경우는 기획안과 시안을 먼저 보여주고 의견을 조율하는데 이과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시안이 고객 마음에 안 들면 얼마나 다행인가. 본 작업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눈앞이 깜깜할 것이다. 실제로 난 프로젝트를 통째로 갈아엎는 리디자인을 3번까지 해봤다. 이때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시안도 보여주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었다. 그 후 시안과 기획 작업 없이 시작하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세 번째, 효율적으로 일한다.
나는 효율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당연하게도 비효율이라는 단어는 싫어한다. 요즘에도 유행하는 가성비라는 단어도 비슷한 의미라고 본다. 일하는 시간과 단가를 효율적으로 책정한다.
두 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똑같은 100만 원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a라는 디자이너는 하루 만에 끝내고 납품했고 b라는 디자이너는 일주일이 걸려 납품했다. 당연히 a디자이너가 효율적으로 일을 한 것이다. 능력 있는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관리를 굉장히 효율적으로 한다.
일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한 달로 계산해보면 수익이 크지 않다고 상담을 요청해오는 디자이너들이 꽤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일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익률이 낮은 업무를 오랫동안 잡고 있으니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가 착각하는 것 중 한 가지가 '돈을 조금만 벌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일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우리에게는 있다. 내가 직접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1인 디자인 기업만의 장점 아닌 장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효율을 따지지 않고 일을 수주한다면 나도 모르는 새 배고픈 아티스트가 되어 있을 것이다.
효율화는 단지 일의 선택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도 중요하다. 퇴사를 하면 일할 공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디자이너는 작업실이 있는 편이 좋다. 노트북 한대만 가지고도 일을 할 수는 있지만, 모니터도 한대 더 연결해두면 그만큼 일이 수월해지고, 스캐너나 프린터도 있으면 좋다. 수작업이 필요하다면 넓은 책상도 필요하고, 각종 자료를 보관할 만한 책장도 필요하다. 그래서 독립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작업실이나 사무실 등 일할 공간을 먼저 찾고 계약한다. 작업실을 얻을 때에도 효율을 따져보는 것이 좋다. 월세가 너무 많이 나가는 건 아닌지, 출퇴근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작업실이 꼭 필요한 것인지부터 꼼꼼히 따져보자.
필드에서 혼자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단단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누구 하나 내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전쟁터 같은 디자인 판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프로페셔널 디자이너로서의 나, 그리고 내 디자인을 믿고 뚜벅뚜벅 걸어나가자. 디자인도 결국은 멘탈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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