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연장 탓을 하여도 되는 때랍니다.

by 잡학거사

어려서부터 두 명의 누이와 밑으로 두 명의 여동생을 둔 탓에 이발소보다는 미장원에 더 익숙한 것은 사실로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미장원에서 컷을 하고 있는데, 미용사 분께서 혼자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인즉, 바리캉(Bariquant)이 망가져서 A/S를 맡겼고, 동급으로 빌려줘야 하는데 밑에 급의 기계를 받는 바람에 손에 익지도 않고 작동도 어렵다는 푸념어린 내용이였습니다. 제가 말을 받아 “선수는 연장을 나무라지 않는다.”라고 하였더니, 아니에요! 이제는 연장에 따라 정말로 달라요~ 하며, 예전의 고대기와 요즘의 고대기의 차이는 하늘과 땅으로 제가 아무리 잘한다고 하드라도 절대 달라요 라며 당차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였습니다. 듣고 보니 제가 지니고 있는 생각이 구버전(Old Version)이였음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되어 그 말에 토를 달았습니다. 기술은 무한히 발전하고 고객 만족을 추구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제품의 퀄리티는 날로 발전되며,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도 변화가 촉진되어 유저 프랜드리(User Friendly)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가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미용사 분은 정말로 다르다고 기계 자체를 손에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능에 대한 적용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고 하였습니다.

저와 같이 시대적 변화에 대한 감각이 뒤지는 측면에서 한 분야의 현장 전문가가 저에게 던져주는 화두(話頭)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단초(端初,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미용사 분께 교회에 출석하느냐고 물어 나누었던 이야기는 각설(却說, 이제까지 다루던 내용을 그만두고 화제를 돌리다.)하고 저 자신의 믿음으로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겨보게 됩니다. 제 스스로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을 들어낼까? 제대로 생각지 못하고 연장 탓만을 한 것은 아닌지?를 말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가며, 주님께 귀와 마음을 활짝 열어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을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지? 매순간을 하나님께 진심과 전심으로 드리며 제대로 맡기고 의지하며 바라고 갈망 하였는가?에 대하여 돌이켜 보며 말씀이 의도하지 않는 자의적 판단이 들어간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말입니다. 죽음을 불사하시며 목숨을 바쳐 우리를 사랑해 주심에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으로써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드리는 자세로 믿음에 임하였는지에 대하여 돌이키지 못하며 교회가 어떻고, 가르치는 것이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등의 불만을 토로하며 표출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하여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이 모두 틀렸다는 양비론적 측면이 아닌, 한 체계 안에 본질적인 두 상태 혹은 두 부분이 있고, 이 요소들은 서로 독립적이기에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원론적 입장에서 접근해 본다면 믿는 자들의 현실적 입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은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세상의 마지막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말씀 아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주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심에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멸망하게 된다는 명제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종말에 대한 준비를 위하여서 라도 믿음을 굳건히 하여야 된다는 것으로 이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구속사(救贖史, History of Redemption)적 입장에서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중심으로 타락한 죄인들인 우리를 구원해 가시는 과정에는 죄라는 속박에서부터 그 값을 주고 풀려나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좁은 길로 순례를 떠나야 하며,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자기부인의 경지에 다다라야 하며, 새 창조의 역사에 따르는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과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이를 놓침은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당연시 따라야하는 속성으로 믿음은 행함이 없다면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기에 행함은 구원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행함은 마음에 존재하는 믿음의 결과요 하나의 열매이므로 행함을 위한 전제와 환경적 입장을 잘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정은 개판인데, 나만 믿고 나만 구원 받겠다고 하는 자체도 웃기지만 제대로의 방향성도 없는 상태에서 형식적인 절차와 경건의 모습만으로 뒤뜰만을 밟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제는 연장 탓을 하여도 되는 때랍니다.”라는 제목에서처럼 우리 자신의 믿음을 소중히 생각하며 제대로 돌아보는 측면에서 너무 연장만을 의지하고 있지는 아닌가?와 연장이 후지고 아니다! 라는 불평불만만을 토설하는 것이 아닌, 연장을 잘 튜닝하고 활용을 극대화하여 자신에게 최적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토록 믿고 있었던 연장이 상황에 따라 적절하지 못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온전하고 완전으로 향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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