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Empathy, 共感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매우 바쁜 삶 속에 우리는 주변 상황을 살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하고 소통하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도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신경을 쓸 만큼 오지랖이 넓지 못하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답답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조금 더 젊었을 때 보다 조금 더 오지랖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냥 지나 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어떤 상황들에서 참견을 하고 싶어 지는 마음이 생기고 끼어드는 경우가 생긴다. 그 상대가 특히나 잘 모른 사람들일 때 그렇다. 잘 아는 사람들이야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
때로는 아는 사람이지만 아직 같은 영역에 두지 못해 선을 그어 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 동일하다. 내가 아는 것은 그들의 겉모습이고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알려주고 싶지만 일부러 알려 주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최근에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아직 친해지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대화를 하거나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몇 번은 그들의 생각에 내 생각을 더해 주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눈앞에 놓인 문제에만 집중하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에는 정작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우선순위 아래 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번 내 경험을 통한 현실을 이야기해 줘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묻지 않으면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참고 있자니 답답함의 나의 몫이 되어 돌아온다.
이렇게 나는 그들과 공감을 하려고 하지만 혼자 백날 그들에게 나의 목소리를 내어보아도 그들이 나의 이야기에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공감이 성립할 수가 없다.
며칠 전에 지금 하는 일의 업무 리더를 맡고 있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다. 내가 했던 이야기들을 흘려 들었던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았고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야 뭐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으니까 만나기로 했다. 그분과 짝꿍처럼 다니는 분과 셋이서 같이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도와 달라는 이야기이고 그들이 내가 했던 말을 흘려 들었던 것에 대한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내 이야기에 이제야 공감을 해 주고 손을 내민 것이다. 이렇게 공감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고 영원히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시간을 통해 서로 간의 유대 관계, 관계의 거리가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공감은 그런 것이다 상대방을 신뢰하게 만들고 신뢰받게 만든다. 재미있다고 한 것은 사실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는 이미 22년 전에 함께 일을 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첫인사를 할 때 서로 어디선가 봤던 사람 같은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자리를 통해 과거를 잠시 돌아보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쌓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났던 그때는 신입사원들이 입사를 하면 다른 부서로 몇 명 씩 조를 짜서 간단한 프로젝트(시스템 개발) 업무를 하도록 2개월 정도 파견이 되었다. 우리 부서에 4명 정도가 왔었고 나는 그분들에게 개발 교육과 개발 진행 점검 등을 해 주었었는데 그때 그 멤버들 중 1명이었다.
세상이 참 좁다. 22년 전 그 신입사원을 내가 지금 파견 나간 부서의 리더로 만나다니... 우리는 반가움에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면 수다를 떨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어색한 관계에서 과거의 일이지만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조금 더 빠르게 공감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었다.
또, 답답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출퇴근을 위해 통근 버스에 타고 내리면서 기사님과 얼굴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목례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른 체하고 이러다 보니 어딘가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 기사님에게 목례에 말을 더 해 인사를 한다.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면 기사님은 엄청 피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수의 사람만 그렇게 한다는 것을 버스를 계속 타다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버스에서 내릴 때 내가 먼저 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내리면 기사님도 어찌 되었든 같이 인사를 해 준다. 그리고 내 뒤에 내리는 승객들 중에서도 같이 인사를 하는 사람들을 줄을 잊는 경우가 많다.
기사님은 피곤하게 왜 인사들을 하고 내리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런 작은 한마디에 힘을 얻고 생활을 활력을 얻을지 모른다.
가끔 타게 되는 광역 버스, 타고 내릴 때 기사님과 인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내가 타는 광역 버스는 앞으로 내려야 하는데 나는 광역 버스에서도 내릴 때도 통근버스에서 하던 것처럼 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내린다. 그러면 기사님도 잠겨있는 목을 열어 인사를 해 준다.
이게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안에 답답함을 안고 살기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꺼내어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생각만 하는 것보다 삶을 살아가는데 에너지가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인사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으니까.
소통과 공감에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간단한 인사로도 공감하는데 충분할 수 있다. 짧은 인사말 한마디는 결국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서는 것이고 그를 통해 상대방도 나의 인사를 받아 줌으로써 나는 상대방에게 고마움의 표현을 상대방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찾게 되는 공감하게 된다.
공감은 짝사랑이 아니다는 글에서 처럼 공감은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의 행동, 말, 생각에 동의를 해 주는 공감을 해 주어야 짝사랑 공감 아닌 진정한 공감이 형성이 되는 것이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말이다.
공감을 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서로가 공감을 할 수 있는 매개체는 반드시 있다. 없다면 만들수도 있다. 자주 마주치지만 인사도 하고 지내지 않던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인사를 하다보면 인사를 떠나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공유해 주는 사이가 될 수 있다. 혹시 내가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때 그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 되어 줄 수도 있다. 가끔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안면만 터 놨는데 시간이 지나 그 하나만으로 도움이 되고 되어주는 그런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간단한 인사 하나만으로 가능한 일이다.
<사진:UNF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