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듯이 앞으로 걸
아침에 일어나 바라본 창문의 풍경은 비로 얼룩져 창 밖으로 모든 것이 뿌옇게 펼쳐진다.
얼룩지고 흐릿한 풍경과 나의 처지가 이렇게 닮을 수가 있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이었겠는가?
수도 없이 이런 순간들을 지나왔겠지만 이제 점점 더 흐려진 풍경뒤에 펼쳐진 세상으로 달려가는 것 자신이 없어진다.
IT 업의 특성상 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IT 시장, 기술 등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익히고 발전시켜 나아가고 또 새로운 것을 익히고 도전하기를 반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만큼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IT 시장이다.
당연한 현상인지 모르겠지만 IT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IT 변화를 타고난 것처럼 빠르게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시장을 만들고, 개척해 나간다. 그렇게 해를 거듭하고 성장해 나가고 어느 순간 출발했던 지점에서 하던 일은 사장되어 통용되지 않는 도구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잠시 과거를 돌아보면 닷컴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며 영원 불멸할 것 같았지만 남아 있는 기업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게 생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현실에서는 모두가 AI, chatGPT가 IT 시장을 점령하고 또 한 번의 인터넷 혁명과 같은 바람을 불러올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고 모두가 거기에 미쳐있다.
몇 년 전만 해도 4차 산업혁명이 세상에 가져올 변화는 엄청난 것처럼 떠들어 댔다. 사실 많은 부분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잘 인지하지도 못한다. 나조차 그때는 흥분하여 어떤 사업들을 하면 좋을지 그런 것들이 정말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변화해 보려고도 했었지만 지금 어떤가?
통신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알 수 없을 거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반쪽짜리도 되지 않는 5G 통신과 단말기로 마치 완성된 5G 서비스를 제공할 것처럼 난리를 쳐 댔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속임 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모든 걸 잊고 불편함도 참고 사용하다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있지 않던가?
한 발치 멀리서 바라보면 똑같은 수순을 밟을 것은 분명하다. 그 기업들 중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기업이 살아남을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강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은 먹이 사슬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운명과 같다.
IT업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 현실의 유행에 올라타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넘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두려움, 불확실과 같은 걸림 돌들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나는
눈앞에 펼쳐진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세상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희미하게만 보이고 어느 하나 또렷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어쩌면 더 이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직장 생활을 많이 하신 부장들이 MZ세대들이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도 하지 않고 시간만 때우러 회사에 오는 것 같고, 리더로서 사람들을 리딩 하려 하지 않으며, "내가 옛날에는..."라는 말들만 늘어놓으며 꼰대 짓을 한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블라인드, 회사 익명 게시판들을 통해 많이 접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그렇게 안주하려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텐데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지만 나 또한 그런 상황들에 점점 더 수렴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도 늙어가고 있구나"라는 말이 오만가지 생각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사실 쉰이 넘은 나이에 세상 변화의 속도를 MZ세대들 만큼 빠르게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느리게라도 꾸준히 가면 좋겠지만 정말로 "내가 아직도 이런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찾아와 갈등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갈등 속에서 포기를 하는 상황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회사를 위해 그동안 기여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가?"라는 이제는 보상을 받고 싶다는 그런 심정으로 남은 여정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그런 게 아닐까?
정년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날, 기대 수명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 일선에서 물러설 때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물러서지 않으려면 변화에 수긍하고 변화에 올라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이미 고착화된 생각에서 벗어나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늘 그런 상황이 내 안의 갈등의 요소가 된다.
최근에 정년이 되어 퇴임을 하시는 분들도 보이고, 또 다른 꿈이 있어서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용감하게 넘어서는 분들을 보면서 정말 용기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그분들은 직장을 때려치우더라도 먹고 살 무언가가 준비된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회사를 떠난다면 현재와 같은 일상의 삶이 가능할까?
불확실, 불안정 같은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려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가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IT업계 종사자들 중 평생 해오던 것을 그만두고 치킨집을 차려 나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 선배가 찾아와 명함을 내미는데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고, 짠해 보일 수가 없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을 찾아온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오래전 나의 멘티였던 친구하나가 회사를 일찍 그만두고 자기 일을 하겠다고 나갔지만 소식조차 들을 수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반면, 잘 나가는 친구들도 있다.
몇 년 전 현재의 부서로 옮기기 얼마 전, 알고 지내던 글로벌 기업의 친구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한다고 뛰쳐나왔다. 그렇게 장사 수안이 좋은지 미처 몰랐다. 국내 시장을 독점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내가 그곳에 근무할 때 꾸준하게 나에게 접근을 해 왔지만, 내가 그 부서를 떠난 이후로 한 번도 나를 찾지 않는다. 소문에 그는 무서울 정도로 회사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켜나가고 있다는 소문과 소식에 그저 놀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소문을 듣기도 했다. 그 친구는 퇴사를 하자마자 국산 중고차를 타고 다니다 바로 수억 원대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알고 보니 금수저였다.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게 더 신기했다. 몇 년을 같이 일하고 동고동락했었는데...
나와 그 친구의 차이점이라는 것은 계획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을 하고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딪혀 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 목표로 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또 하나,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도 그건 알아"라고 말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라는 핑계로 우리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고 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특히나 직장인들은 직장의 그늘을 벗어나면 큰일이 리도 날 것 같다는 생각을 부적처럼 들고 다니며 어떤 유혹에도 빠져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면서도 현실도피 또는 현실에 안주하려고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던지고 싶지 않은 이유는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가야 할 곳은 보이지 않고 희미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생각들이 지금 이 순간에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그런 날들은 헤쳐지나오기도 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했다. 어떤 희미한 상황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