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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걷기란?

걷기 예찬

by 노연석

내 나이 서른 살.

그즈음에 첫째 딸아이가 태어났다.

2002년 결혼을 해서 2년이 지난 후 한일 월드컵이 시작하기 전에 큰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회사에서 대리였고 한창 일할 시기 이기는 했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일을 했었던 시절로 기억이 된다.


내가 수행해야 했던 프로젝트들이 언제나 즐비하게 줄을 서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 둘 해 치우느라 허리 디스크를 고질병처럼 달고 살아야 했었다. 아침 출근 후 퇴근 하는 시간은 늘 밤 12시나 되어했다. 정확하게 늘은 아니지만 그런 날들이 많았고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다.


어느 날 나는 출근을 해서 일을 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쓰러지고 말았던 일이 있었다. 허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그런 몸으로 운전까지 해서 병원으로 가서 물리치료, 견인 치료를 마치고 일어서다 또 쓰러지기를 반복했을 정도였다.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조금씩 좋아지기는 했지만 의사 선생님의 수술을 해야 한다고 협박 같은 진단을 내려 버렸지만 나는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치료를 해 보겠다고 우기며 건강을 위한 걷기가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집 앞 공원을 걷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더 좋아지기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무리하는 날에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통증들이 밀려오고는 했었다. 그래도 열심히 걸었고 그 단계를 지나고 나서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 물에 빠져도 내 몸 하나 건사 할 정도는 되지만 수영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은 없었다.


수영도 배우고 허리 디스크도 정상인의 디스크로 돌려놓는 일석이조의 좋은 기회였기에 열심히 해서 모든 영법을 배우고 상급자반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다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허리도 많이 좋아져서 그만두기로 했었다. 그렇다고 수영을 그만둔 것은 아니고 자유 수영으로 전환을 했고, 내 허리 디스크는 점점 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갔었고 꾸준히 다른 운동들을 병행하면서 거의 완치가 되었다.


그 후로 쉰이 넘은 지금도 허리 디스크 때문에 다시 고생을 한 적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같이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자신의 건강을 망가뜨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한 결과 들이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비교적 몸이 건강한 상태이기 때문에 몸이 견디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여기저기서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었다.


허리 디스크에 가장 좋은 운동은 걷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도 하루 1만 보에서 2만 보 사이를 걷는다. 출퇴근 시간, 점심 식사 후 산책을 하고, 걸음 수가 부족한 날은 공원으로 가서 부족한 걸음 수를 채운다.


걷기를 할 때 가능하면 빠른 걸음으로 배에 힘을 주고 걷는 것을 권장한다. 걷는 것만으로 많은 도움이 되지만 이왕 하는 것 조금 더 노력하면 건강해지는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사십 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의 건강 신호에 위협을 가져온 병은 당뇨다.

정확하게는 당뇨 전단계. 아버지가 당뇨로 고생을 하셨던 기억이 있는데 좋지 않은 것을 물려받았고, 아직 당뇨라고 판정을 받지 않은 당뇨 전단계에서 언제 선을 넘을지 모르는 상태까지 와 있었다.

당뇨 전단계, 당수치도 높지만 당화혈색소 수치가 많이 올라가 있는 상태라 관리가 필요했고,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 들고 내게 찾아온 반갑지 않은 친구를 관리하기 위해 혈당 측정기를 구입하고 매일매일 측정을 하며 결과를 스마트폰 앱에 기록을 해 나갔지만 급진적으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저 나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면서 스스로 주의를 하기 위한 정도로 매일 측정을 했었다.


그 시절부터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식단을 조절해야 했었는데, 탄수화물의 섭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샐러드와 사과로 매일 아침 식단을 바꾸고, 회사 식당에서는 밥을 평소보다 적게 먹기 시작했고, 집에서도 먹는 밥의 양을 줄여 나갔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서 받은 건강 검진의 결과도 그리 좋지는 못했었다. 전문 병원에 가서 당뇨 검사를 받아 보라는 진단이 나왔고 재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했었는데 그동안 기록해 온 혈당 기록을 보여 드리니 일단은 좀 더 관리를 해 보라는 진단을 받았고 당뇨 판정을 받지는 않았었다.


그때부터 다시 걷기 시작을 했던 것 같다.

회사가 가까울 때는 퇴근을 걸어서 하기도 하고 서울로 근무지를 옮기고 나서 퇴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에서 40~50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에서 내려서 매일매일 걸었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한 여름 푹푹 찌고 뜨거운 날씨에도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걷기를 많이 하다 보니 당뇨뿐만 아니라 근육량도 많이 늘어나고, 체지방도 줄어들어 들다 보니 고지혈 수치도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뇨 수치는 기뻐할 만큼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전 검사 때보다 좋아져서 안심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고 늘 복병이 찾아와 잘 만들어져 있는 루틴을 깨서 흐름을 망쳐버리는 일이 생겼는데, 서울 잠실로 다시 근무지가 변경이 되면서 하루 1~2시간 미만의 출퇴근에서 4시간 이상 시간을 길에 버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걷는 양은 늘어났기도 했지만, 출퇴근 스트레스로 인한 또 다른 변수의 출몰로 그리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지하철도 버스를 타는 것조차 힘들어졌었다. 어떤 날은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좋지 않은 공황 장애 수준까지 갔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하는 일보다 출퇴근 길이 더 지옥이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방영했던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들의 심정과 같았고 심지어 내 이야기를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퇴근 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고,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다 보니 외롭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물론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삶을 사느라 내 곁에 아무도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텅 비어 있는 집은 나의 공허함을 더 공허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결국 나는 혼자 밥을 차려 놓고 소주 한잔씩 하는 날이 늘어나고 그런 날들이 점점 쌓여가면서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었다.


당연히 당뇨에 술은 최고의 적인데 나는 당장 내 몸에 그리 불편하지 않으니 당뇨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그런 삶을 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점점 더 피폐해지고 망가져 가고 있었다. 당연히 당뇨 수치는 다시 올라가고 당화혈색소 수치도 정말 마지막 노선까지 와 있었다.


그래도 당뇨는 나의 힘든 삶에 아직 낄 자리가 없었다. 나는 점점 더 알코올 중독자와 같은 삶을 살면서 아침에 몽롱한 상태로 상쾌하지 않은 아침을 늘 맞이하고, 힘든 하루 후에 다시 외로움을 달래주는 술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반복되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었다.


정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면서 식탁 위에 놓인 반찬들은 언제나 술안주로 보이고 술안주를 보니 그냥 지나치기 힘든 상황들과 유혹에 넘어가 식탁 위에는 늘 술병이 놓였다. 나를 위로해 주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기에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도 걱정을 하기 시작했었고 나도 나 스스로도 점점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었다. 그 늪과 같은 구렁텅이에서 나는 벗어나야 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최대한 밥을 빨리 먹고 운동을 하러 나가는데, 골프를 하고 있어서 인도어 연습장에서 한 시간을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고 다시 체육공원 운동장으로 향해 걷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고 나면 10시쯤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돌아와 바로 씻고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식단도 아침에 샐러드와 사과를 2년 정도 먹었었는데 오랜 시간 하다 보니 지겨워지기도 해서 달걀 2개와 사과 1개로 변경을 하고 1년 넘게 유지를 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술과 당뇨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길로 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그 길 위를 또 함께 해 주고 있는 것은 역시 걷기다. 한동안 달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쉰이 넘어가다 보니 무릎이 아파서 오래 뛸 수가 없었다. 물론 짧은 시간 열심히 뛰어서 땀을 내는 데는 효과적이기는 하다. 사실 걷기도 1시간 이상을 하면 왼쪽 무릎이 아파와서 더 많이 걸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아직도 나는 당뇨와의 전쟁을 몇 해 동안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이 싫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미운 이 친구와 걷기라는 친구와 함께 가야 한다. 최소한 당뇨라는 진단을 받을 만큼의 선을 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혈압 약과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사는데 바빠서 몸이 망가지는 것을 외면 한 채 살아간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젊었을 때 건강을 지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지 못하면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대부분 피부에 와닿지 않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나도 젊은 시절 그런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었지만 내 몸이 나빠지고 나야 그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같은 일을 반복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결과의 차이는 엄청난 것일 것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술을 마시는 날이 많고, 국밥 집에 가면 자연스럽게 술이 생각나고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하나요"를 외치지만 또 나름 회피하는 방법들을 찾아보고 하루라도 돌아갈 수 있는 노력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정말 걷는 것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며 친구이기에 영원히 함께 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 걷기만 한 것이 없다. 적어도 나의 건강을 치유해 주는 최고의 운동이었고 미래의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동행해야 할 친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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