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lanet grou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나물 Oct 11. 2019

독일 와인이 낯선 그대에게

아름다운 모젤강을 바라보며 리슬링 한 잔

독일 와인 생산지 from: http://winesofgermany.co.uk/

 다들 독일 하면 맥주가 떠오르지 와인이 쉽게 떠오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세계 10대 와인 생산국이고 화이트 와인 특히 리슬링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생산해내고 있다. 독일 태생의 포도인 리슬링 외에도 기존 시장에서 맛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품종들로 세계 시장에서 점차 인지도를 쌓아나가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좋은 와인 생산지는 라인가우(라인강 유역)와 모젤(모젤강 유역)을 꼽을 수 있다. 라인강은 스위스에서 발원하여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로 흘러가고, 모젤강은 프랑스에서 발원하여 트리어를 거쳐 코블렌츠에서 라인강과 만난다. 그래서 옛날부터 두 강을 따라 생산된 품질 좋은 와인들은 강을 따라 코블렌츠로 모여들었고, 코블렌츠는 독일 와인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아침도 거르고 서둘러 코블렌츠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서부터 트리어 방향으로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다. 밤에는 모젤 강변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젤팅겐에서 리슬링에 흠뻑 취해 잠이 들 것이다.

모젤강변의 가파른 포도 밭

 모젤의 포도밭은 경사가 가파르기로 유명하다. 독일은 위도가 높다 보니 포도를 기르기에는 평균 온도도 낮고, 일조량도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몇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가파르게 경사진 땅에 포도를 심어 조금이라도 더 오래 햇빛을 받을 수 있게 하며, 포도밭을 강에 가깝게 일궈 강에서 반사된 빛으로 부족한 일조량을 대신한다. 납작한 돌들로 이루어진 이 곳의 토양은 낮시간 동안 태양을 받고 달궈져 추운 밤 동안 포도를 따뜻하게 유지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본디 독일지역에서 자라던 야생 포도의 혈통을 이어받은 리슬링이기에 이러한 기후에도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경사가 70도에 이르는 가파른 포도밭에는 기계가 들어갈 수 없어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돌보아야 한다. 그래서 경사가 가파른 밭에서 수확한 포도들은 단가가 많이 비쌀 수밖에 없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아늑했던 우리의 숙소

 굽이치는 모젤 강변을 따라 한 시간 정도 달려 젤팅겐에 도착했다. 오늘의 숙소는 옛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호텔이다. 집의 뼈대는 나무로 짓고, 그 사이사이에 벽돌이나 흙을 채워 넣은 하프팀버(half-timber) 형태로 독일 남부 스타일로 꽤 화려하게 지어져 있는 집이었다. 비록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미로 같은 작은 계단을 오르느라 땀이 흠뻑 났지만, 끼걱끼걱 거리는 계단이 여행 온 맛이 났다. 맛있는 와인을 마실 생각에 짐만 덜렁 던져놓고 길을 나섰다.

마커스 모리터 (Markus Molitor)

 대부분 이름난 와이너리들은 콧대가 높다. 사전 약속 없이는 방문이 어렵고, 사전 방문을 잡는 것도 사실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중 특별한 예약 없이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는 몇몇 와이너리 중 한 곳을 들렀다. 마커스 모리터는 독일에서 가장 비싼 포도밭을 가지고 있는 와이너리이다. 이 곳에선 단 돈 20유로에 20여 종의 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는데, 와인을 좋아한다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독일의 프리미엄급 와인은 얼마나 포도를 늦게 수확했느냐로 종류를 나눈다.


- 수확시기에 따른 분류

Kabinett(카비넷)

Spätlese(슈페트레제)

Auslese(아우스레제)

Beerenauslese(BA) (베렌 아우스레제)

Trockenbeerenauslese(TBA) (트로켄 베렌 아우스레제)

Eiswein(아이스바인)


베렌 아우스레제부터 귀부병이 걸린 포도가 쓰이며, 아이스바인은 나무에 달린채 언(frozen) 포도로 만든다. 해당 등급은 웩슬러(Oechsle)라는 포도즙의 밀도를 측정하는 단위로 나누어지게 된다. 늦게 수확할수록 포도의 수분이 날아가며 좀 더 당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달지 않은 와인을 선호하다 보니 이전까지는 카비넷이나 슈페트레제 리슬링 정도만 마셔보았다.

테이스팅 룸이 안락했다.

   슈페트레제와 아우스레제 중 한 병을 사려고 두 개의 와인을 마셔보았다. 처음 아우스레제의 향을 맡는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슈페트레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진한 벌꿀 냄새와 톡톡 튀는 꽃 향기가 기대감을 높였다. 한 모금을 마시자, 복숭아 향과 사과향이 뒤섞여 퍼지며 기분 좋은 단 맛이 났다. 나는 주저 없이 아우스레제를 샀다. 왜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포도를 늦게 수확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독일산 레드와인을 마셔보았다. 1930년대 이전에만 해도 모젤은 리슬링이 아닌 슈페트부르군더(Spätburgunder)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피노누아(Pinot Noir)라고 부르는 포도 품종을 독일에서는 이렇게 어렵게 부르고 있었다. 처음 느껴지는 향은 다소 충격적인 향이었다. 흔히 피노누아는 체리나 자두향을 필두로 삼나무나 버섯 같은 자연의 냄새가 잔잔히 올라오는데 이 와인은 비릿한 버섯 내음 같은 이상한 향이 지배적이었다. 피노 누아가 떼루아(토양)에 민감한 품종이라 그런지 이제까지 마셔본 피노누아와는 전혀 다른 향을 지니고 있었다. 값이 약 2배 차이나는 같은 빈티지(생산연도) 와인으로 다시 도전했지만, 역시나 나와 맞지 않은 향에 한 모금만 마시고 내려놓았다.

두 번째로 방문한 와이너리, 하인리히스 호프 (Heinrichshof)

 첫번째 와이너리에서 생각보다 취하지 않아서,  젤팅겐 마을 뒷산을 소유하고 있는 하인리히스 호프 와이너리도 들렀다. 지금은 두 형제가 함께 일궈나가고 있고, 와인 테이스팅은 두 형제의 어머님이 진행해주셨다. 걸걸한 목소리와 훤칠한 키 그리고 꽤 단단한 어깨로 무장하신 어머님은 아버님을 만나 하시던 공부도 그만두시고 포도 농장으로 시집오셨단다. 시아버님을 도와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 테이스팅도 공부하셔서 지금의 사업을 함께 일구셨단다.

  테이스팅은 낮은 당도에서부터 당도를 높여가며 마시게 진행되었다. 독일에서는 와인의 당도로 와인의 맛을 분류한다.


- 당도에 따른 분류

드라이(달지 않은): Troken(트로켄)

오프-드라이(많이 달지 않은): Fienherb(파인헤릅)

스위트(단): Süß(쥐스)


트로켄과 파인헤릅은 정해진 당도가 있고 그 이상은 쥐스로 구분된다. 해당 당도는 앞서 말한 품계와는 또 다른 기준인 설탕 함유량으로 관리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맛보기로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슈페트부르군더(피노누아)와 소비뇽 블랑(화이트 와인 품종)을 먼저 내주셨다. 소비뇽 블랑과 리슬링을 처음 같이 마셔보았는데, 두 와인의 개성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처음에는 경사도가 다른 밭에서 난 트로켄 리슬링 세 잔을 내어주셨다. 기계로 수확한 와인, 경사도가 45도 정도 되는 밭에서 수확한 와인, 경사도가 70도 정도 되는 밭에서 수확한 와인. 이렇게 세 잔을 따라주셨다. 경사도가 가파를수록 더 부드러운 매력이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세 와인 맛이 똑같다면 내가 뭣하러 손으로 힘들게 와인을 따겠냐며 뿌듯해하셨다.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최상급 트로켄 와인과 새 오크통으로 양조한 와인도 따라 주셨다.  

아기자기한 테이스팅 룸

다음으로는 파인헤릅 리슬링 세잔을 주셨다. 이번에는 수확 시기가 다른 카비넷, 슈페트레제, 아우스레제 이렇게  준비해주셨다. 역시나 아우스레제의 향은 끝내줬다. 특히, 아우스레제는 벌꿀 향이 강해서 실제 당도에 비해 훨씬 달다고 느껴졌지만 목구멍을 타고 흐를 때에는 과하게 달지 않아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이 와인은 맛이 크게 달지 않아 많이 마실 수 있겠다 칭찬드리자 늦게 수확한 포도로 달지 않게 만드는 것도 다 우리 집 기술이라며 개인적으로 단 와인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계속 연구하신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는 쥐스 와인들을 맛보았다. 옛날 독일에서는 결혼식 맨 마지막에 신부 아버님이 굉장히 단 아우스레제를 작은 잔에 나눠주고 건배사를 하시면 암묵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계속 더 마시기엔 가격이 너무 비싸 신부 아버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란다. 우리도 그 전통에 따라 가장 달고 비싼 와인을 끝으로 테이스팅을 마무리 했다.

 다음 주부터 포도 수확이 시작되는데, 비탈진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포도 딸 생각을 하니 벌써 힘이 드신단다. 게다가 더 일찍 일어나셔서 20인분의 점심을 준비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란다. 그녀의 무릎에 난 큰 수술 자국이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말해주었다. 나는 고작 12유로와 와인 몇 병으로 이렇게 소중한 이야기를 들어도 되는지 미안하기만 한데, 그녀는 단돈 12유로에 10여 병을 내주면서도 오히려 연신 돈 받는 것을 미안해했다.

젤팅어 호프 (Zeltinger hof)

  중간중간 와인을 뱉는다고 뱉었는데도 살짝 비틀거리며 식당에 들어섰다. 이제는 잠들 때까지 신나게 마실 일만 남았다. 와인의 매력은 음식과 함께 마셨을 때 더 강하게 발현되는 것 같다. 샤르도네는 오크 통 숙성 과정에서 나무향이 베어져 비린 음식과 좀 더 잘 어울리는 경향이 있지만, 리슬링은 과일향이 더 두드러져서 어떤 음식과 먹어도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식사보다 먼저 주문 한 리슬링

사실 나는 독일 여행을 준비하며 리슬링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프랑스 샤르도네(Chardonnay)나 신대륙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주로 마셨다. 이번 여행기간 내내 리슬링을 맛보며 리슬링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다시 독일을 간다면 또다시 젤팅겐에 머무르고 싶다. 그리고 하인리히스 호프에 들러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의 와인과 함께 또 듣고 싶다.  







화이트 와인 시장에서 리슬링은 자동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 벤츠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특급이다.
- 조정용 와인 경매사님의 '올댓와인2'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 가장 맛있는 소시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