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2020년 봄의 학교는 유례 없이 분주했다. 팬데믹과 함께 개학을 하자 선생님들은 달라진 수업 방법과 평가 방법을 고심하고 무척 복잡해진 출결지침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7시 50분마다 교무실은 콜센터가 되었다. 온라인 조회에 참석하지 않는 아이들을 매일 전화로 깨웠다. 하루에 꼭 한 두명씩 늦잠을 잤다. 심지어 매번 다른 아이들이었다. 이건 담임을 괴롭히기 위한 공모가 아니라면, 당번을 정해두고 돌아가며 늦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온라인 등교라는 네모난 바퀴를 주고 굴리라고 하는데, 전국의 선생님들은 정말로 네모난 바퀴를 굴려내고 있었다. “것 봐, 굴러가지?” 하고 다음엔 세모난 바퀴를 던져주는 건 아닐까. 아이들의 밀접접촉, 격리 등 매일 주어지는 낯선 상황에 대응하기 바빴다.
온라인 개학을 하고 첫 몇 주 동안은 급식실을 운영하지 않았다. 급식을 어차피 먹을 수 없게 된 나로서는 사실 썩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혼자 도시락을 싸 다니면 여기저기서 왜 급식을 먹지 않느냐고 질문 폭탄이 쏟아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채식 선언을 하는 것과 학교에서 채식주의자로 밝혀지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가까운 동기 선생님들 빼고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복도에서 오며가며 여러 선생님들께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질문 받고 싶지 않았고, 고기 안 먹으면 큰 일 난다는 조언도 듣고 싶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가 터지며 충분히 힘들고 피곤해진 학교생활이었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엔 제대로 요리해본 적이 없었지만 생존을 위해 다시 연습하고 익혀야 했다. 다행히 엄마와 함께 산다는 엄청난 이점이 있었다. 집에는 늘 쌀과 잡곡과 얼마간의 요리 재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물은 엄마가 해두신 것을 먹고, 단백질을 생각하여 두부, 버섯 등을 넣은 반찬 한 두가지만 만들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생활요리인으로 살았던 감각을 조금씩 되찾았다. 종종 상당히 독창적인 맛이 나오기도 했지만, 요리캡틴 엄마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덕에 요리 실력이 천천히 늘었다. 파프리카 표고볶음, 두부조림, 두부스크램블, 비건 카레 등 어렵지 않은 요리 몇 가지를 익혀서 적당히 도시락을 쌀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과 친한 동료선생님들에게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여전히 집에서는 소화불량인이었다. 거의 네 달 동안 집에서 고기를 먹지 않았다. 김장을 한 날에 아빠가 수육을 사오면 옆에서 나는 소화가 안 된다며 두부를 데쳤다.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도저히 가족들 앞에서는 말 할 엄두가 안 났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는 반문과, 내 건강에 대한 염려와, 나의 해명과, 답답함으로 종결될 대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리 언니가 비건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고기 안 먹으면 힘 없다고 걱정하신 아빠인데, 당신의 딸이 비건이 되었다고 하면 얼마나 놀라실까 싶었다.
동물권 독서모임도 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었다. “와” 사람들까지 만나지 못하니 참으로 적적했다. 적적함과 고립감을 달래준 것은 책이었다. 독서모임을 하지 않는 동안 투표 후보엔 있었지만 선정되지 않았던 책들을 혼자 읽기 시작했다. <동물해방>,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그럼, 동물이 되어보자>, <육식의 성정치>를 읽으며 생각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 마냥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 속으로 맞장구를 치고, 울고 웃으며 책에 밑줄을 긋고 공책에 필사를 했다. 집에서 난 소화불량인이었지만 나의 책장은 점점 동물권과 비거니즘 서적으로 채워졌다. 빼곡해지는 책장과 함께 비거니즘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조밀해졌고, 비거니즘이란 렌즈로 세상을 설명하는 어휘집도 풍부해졌다.
그맘 때쯤 멜라니 조이의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만났다.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 제목은 내가 어릴 적 수족관 앞에서 던졌던 것과 같이 “원래 다 그런거야”로 외면당했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조이는 심리학자답게 종차별주의를 정당화하는 인간의 심리적 기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육식주의” 개념이다. 소수의 실천은 특정한 신념체계에 의한 것처럼 여겨져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단순 취향이라기 보단 윤리적 이념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채식“주의”, 비건“이즘”(Vegan“ism”)으로 불린다. 그러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다수의 실천도 명명되지 않을 뿐, 그 기저에 일종의 신념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조이는 특정 동물들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를 “육식주의”로 정의한다. 개는 사랑하고, 소는 먹는 것, 혹은 살아있는 동물과 밥상의 고기를 분절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럽거나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문제 없다는 신념체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다수의 신념체계는 명명되지 않고 비가시화됨으로써, “원래 그런 것”으로 에둘러 말할 뿐 더 이상 의구심을 제기할 수 없는 일상적인 현상이 된다. 조이는 동물을 생명이 아니라 물건으로 보는 것(대상화), 동물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몰개성화), 먹을 수 있는 동물과 없는 동물 등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분화) 등을 육식주의를 강화하는 정신적 메커니즘으로 제시한다.
나름 많은 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책을 읽으며 마음 여기저기가 쿡쿡 찔렸다. 채식을 시작할 때 생선은 허용했던 이유에 대해 덮어두었던 질문을 꺼내보았다. 그 기저에는 종차별주의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류나 갑각류는 포유류보다 나와 가깝게 여겨지지 않았고,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적게 기울였다. 공장식 축산업의 이면을 배우는 동안 어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찾아볼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조이의 책을 읽으며 갑각류와 어류의 쾌고감수능력에 대해 찾아보고, 남획[1], 부수어획[2], 양식업, 어업 폐기물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3] 배우며 해산물도 소비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결심을 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엄마가 요리할 때 즐겨 쓰시는 멸치육수팩이다. 생선, 새우, 오징어 같은 해양동물을 서서히 먹지 않게 되었지만, 다시다의 형태로 여전히 소비하고 있었다. 해산물 소비를 멈추기 위해서는 멸치육수팩으로 끓인 국도 먹지 않는다고 말해야 했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구축한 소화불량인 캐릭터로서는 개연성 있는 요청이 아니었다. 멸치육수팩을 넣어 두부와 함께 맑고 시원하게 끓여낸 김치콩나물국은 소화가 안 된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 없는 요리였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집에서도 소화불량인이 아닌 비건 지향인이어야 비거니즘을 실천할 수 있다는 지당한 결론에 이르렀다.
친구들을 통해 몇 번 연습했지만, 가족에게 비거니즘을 선언하는 것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친구들에게 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을 때는 한 번도 논쟁이랄 것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그렇구나! 알겠어!’ 혹은 ‘와, 너 멋있다!’로 걱정과 달리 싱겁게 혹은 사뭇 긍정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가족과의 저녁식사에서 벌어진 비거니즘 선언은 걱정보다 훨씬 격렬하게 흘러갔다. 고기를 안 먹으면 힘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머리에 새로 들어찬 많은 정보를 어떻게 조리있게 설명해서 건강 걱정을 덜어드려야 할 지 막막했다. 횡설수설 말이 엉켜 나왔다.
비거니즘으로도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도,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상에서 제일 힘 센 근육맨 사나이도 비건이라고 말하다가, 돌연 걱정스런 눈빛의 엄마를 보니 나도 모르게 무려 엄마가 좋아하시는 폴 메카트니와 종종 “레오나드로”라고 잘못 말씀하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비건이라며 감정에 호소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져스>에서 봤는데, 의사들이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비거니즘 식단을 먹었을 때 오히려 혈액순환이 잘 되어 운동능력도 좋았고 피로감도 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일부의 주장일 뿐이라는 아빠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진 모든 지식 병기를 총동원했는데도 의구심에 부딪히니 속이 답답하고 날이 서기 시작했다. 웃기는 것은 나부터도 네덜란드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먹으면 건강할 수 없다고 믿고 살아왔던 사람이다. 주변에 건강히 지내는 비건 지향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거니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시는 엄마, 아빠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이 상했다. 볼은 달아올라 벌개지고 숨은 서서히 턱끝으로 올라왔다. 나의 비거니즘 선언은 선언이라기보단 씩씩대는 엄포의 형식이 되었다.
“그럼 전 세계 비건들이 다 영양실조로 아프게? 안 그렇잖아! 그리고 일단 해보다가 진짜 건강에 문제 생기면 그 때 생각해보면 될 일이지. 무튼, 나 이제 고기랑 해산물이랑 우유, 버터, 치즈, 계란 다 안 먹어. 사실 지난 몇 달도 거의 그랬는데 아무 이상 없었어. 멸치 다시다 넣은 국도 안 먹을 거야. 그거 말고도 먹을 거 많아. 채식이 채소만 먹는게 아니라 과일, 콩류, 버섯류도 먹는 거라니까!”
엄마, 아빠는 우선 알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정말 그건 반대라고 하셨다. 한 순간에 소화불량인에서 절대 아픈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무한건강인으로 역할 노선이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비거니즘을 지향하고 있음을 꺼내어 이야기하니, 큰 산을 넘었다는 생각에 홀가분했다. 내일부턴 숨기지 않고 당당히 고기를 먹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오히려 건강을 걱정해주시는 덕에 비건 지향인으로서 더 영양가 있게 챙겨 먹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점도 나쁘지 않았다.
내일의 출근을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함이 얹혀있었다. 오늘의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비거니즘이 무엇인지, 정말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인지 다 납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날 믿고 알아서 해보라고 하는 엄마, 아빠가 고마웠다. 한 편으로는 공연히 씩씩댔던 것이 민망하고 미안했다.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하지 못한 스스로를 질책했다. 비건 지향인으로 살기 위해선 앞으로 이런 대화를 더 자주 하게 될 텐데. 책과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찾아보며 비거니즘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아졌고 잘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전은 쉽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비건 지향인인 것 같았다. 갈 길이 멀게 느껴졌다.
[1] 해양 생물의 자연 복원력을 넘어설 정도로 많은 양의 어류를 포획하는 일. 해마다 9,300만 톤의 해양 생물이 바다에서 채취되어 죽고 있다.
[2] 특정 어류를 잡는 과정에서 다른 해양 생물들도 의도치 않게 잡는 것. 전 세계 부수어획은 40 퍼센트에 달하며, 미국에선 전체 어획량의 17~22퍼센트가 매년 폐기된다.
[3] UN 보고에 따르면 바다에 버려진 그물, 어망, 밧줄 등의 어업 장비가 전 세계 해양 쓰레기의 10 퍼센트(약 64만 톤)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