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모두에게 따뜻하지 않다
“명절만 되면 남동생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요.”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오래 쌓인 서러움과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홀로 돌보며 묵묵히 살아왔다.
겉으로는 꿋꿋해 보였지만, 명절만 되면 형제와의 갈등이 다시 상처를 파헤쳤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앙금, 서로 인정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이다.
“남과 싸웠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거예요.”
그 말은 내 마음에도 오래 남았다.
가족,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 받는 상처는 더 깊다.
누군가에게 명절은 기다려지는 날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년 찾아오는 시련이자 시험대다.
그 자리가 긴장과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좋은 날, 함께 음식을 나누고 웃어야 하는 시간이
끝내는 말다툼과 상처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정치 이야기, 종교 이야기, 사소한 생활 습관 같은 작은 말들이
쌓이고 쌓인 감정을 건드려 큰 싸움으로 번진다.
형제간의 갈등은 모르는 사람과의 갈등보다 더 아프다.
더 가까운 존재이기에, 사소한 말조차 마음을 찌르는 칼이 된다.
상담자로서 나는 갈등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조율할 수는 없다.
수십 년 쌓인 오해를 단번에 풀어 줄 수도 없다.
다만 곁에서 그 마음을 들어주고,
스스로 한 발 더 나아가려는 용기를 붙잡아 줄 뿐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형제 갈등의 핵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도 갖고,
그런 상황이 다시 생길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당신이 겪은 상처는 사소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전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작은 인정이 내담자에게는 숨 쉴 틈이 되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진짜 아픔’으로 받아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속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순간을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명절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지는 기쁨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는 시간이 된다.
사소한 말이 깊은 흉터를 내고, 오래 쌓인 앙금이 하루 만에 터져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다가오는 명절에는 조금만 달라지기를 바란다.
굳이 상대를 바꾸려는 말보다, 그저 웃으며 흘려보내는 지혜를 택했으면 한다.
잠시 자리를 피하는 것도,
침묵을 선택하는 것도,
나를 지키는 길이다.
다가오는 추석,
우리의 말이 서로를 찌르는 칼날이 아니라,
조용히 등을 토닥여 주는 손길이 되기를.
그 작은 지혜와 용기가 결국 나도, 그리고 우리도 지켜줄 테니.
말을 아끼는 용기, 웃으며 흘려보내는 지혜야말로
나를 지키는 가장 든든한 방법일지 모른다.
※ 본 글은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내담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내용을 변경 및 각색하였습니다. 내담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