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족의 상처는 오래 남는다.
60대 초반의 여성, 갱년기의 파도는 어느 날 불쑥 밀려왔다.
예민해진 감정과 깊어지는 우울감 속에서,
그녀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잃어버린 듯했다.
“갱년기가 오고, 마음이 예민해지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쌓아둔 눈물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고백은 단지 지금의 힘듦만이 아니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던 기억.
그 고단했던 시간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고, 위로받지 못한 채 상처로 남아 있었다.
“어릴 때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요.”
그 말에는 오랫동안 홀로 짊어진 무게가 담겨 있었다.
겉으로는 배우자와 아이들과 평온하게 지내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원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이'가 살아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때의 당신은 어린 나이에 참 많은 짐을 짊어졌어요.
그리고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어요.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행히 현재 그녀 곁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지켜주는 배우자와 자녀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 가족에게서 받지 못한 인정과 지지는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상담을 통해 함께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이어갔다.
“나는 어릴 때 이런 점이 힘들었어. 그때는 정말 외로웠어.”
조심스러운 그 문장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녀는 결국 친정 가족에게 지난 이야기를 솔직히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뜻밖의 사과를 들었다.
“그 한마디 사과에 응어리가 풀렸어요.
혼자 속으로만 삭이던 마음이, 말하고 나니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입을 열기까지가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모르겠어요.
혼자만 끙끙 앓았다면, 평생 영영 못했을 것 같아요.”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은 한결 가벼워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슬펐는데,
선생님이 ‘수고했다’고 말해주니 헛고생이 아니었구나,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갱년기라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남편이랑 아이들 생각도 못했는데…
이제 가족들을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지난 고통을 인정해 주는 일,
그것은 단순한 공감을 넘어
그 사람의 삶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불빛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할 수도 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잘 살면 됐지, 왜 아직도 원가족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사냐고.”
그러나 원가족, 바로 내가 자라난 집에서의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인정받지 못했던 시간, 외면당했던 기억, 위로 한마디 없었던 순간들.
그것들은 나이가 들어도 불쑥불쑥 마음을 흔든다.
원가족과의 갈등은 단순한 다툼 이상의 고통을 남긴다.
그곳은 우리의 뿌리이자 가장 오래된 집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상처는 평생 따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에서의 작은 인정과 사과, 이해의 한마디가
삶을 다시 살아갈 힘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혹시 지금도 원가족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당신의 아픔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 슬픔은 충분히 이해받아야 할 상처다.
이번 내담자가 살아주기를 희망하며 상담을 이어가는 동안,
필요한 것은 많은 것이 아니었다.
갱년기의 혼란, 과거의 상처, 인정받지 못한 시간들.
결국 그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은
누군가 알아주고, 들어주는 것이었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
작은 '알아줌'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마음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의 빛이 되어
세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 본 글은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내담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일부 정보를 변경 및 각색하였습니다. 내담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