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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Jun 16. 2017

내 당근, 네 당근

난 어렸을 때부터 당근을 못 먹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못 먹는 음식이 있다. 

내겐 바로 당근. 당근이 들어간 음식은 거의 못 먹는다.  

어렸을 적 먹다가 토해버린 기억 때문에, 당근은 줄곧 내 천적이었다. 

그래서 유치원 때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에 주황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근을 싫어하던 다른 유치원 꼬맹이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난 유치원 생에서 대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당근을 못 먹는다. 

그런 날 보고 아직 어린애 입맛이라고 놀리는 사람들도 많다. 

왜 깻잎은 그렇게 맛있게 먹는데 당근은 못 먹을까. 


그런 내게 네가 찾아왔다.

 

빛나는 동그란 눈에 다소 큰 앞니를 갖고 있는 너. 

<주토피아>에서 튀어나온 듯한 넌 입맛도 생긴 대로 갖고 있었다. 

밸런타인데이 때 깜짝 선물로 네가 내게 손수 만들었다던 당근 파이를 내밀었을 때 

난 차마 당근을 먹을 수 없다고 네 빛나는 눈동자에 고백할 수 없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한 입 크게 베어 문 순간 내 눈엔 눈물이 고였다. 

목에 걸린 당근 파이를 조각을 억지로 삼키느라 생긴 악어의 눈물이었는데 

넌 그 의미를 다소 다르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너무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는 널 앞에 두고 난 결국 앉은자리에서 꾸역꾸역 당근 파이를 다 먹었다. 

신기하게도 기쁨으로 상기된 널 바라보며 먹은 당근 파이의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멀티태스킹이 잘 안 돼서 그런가.

   

다음에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빈 그릇을 들고 총총거리며 돌아가는 널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23년간 남아있던 마음에 난 당근 모양의 상처는 너의 당근으로 메워질 수 있겠다고. 

다음 당근 파이는 그 누구보다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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