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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디이 Oct 21. 2023

찐세일, 블랙 프라이데이를 대비하는 미국인들의 자세

13시간 동안 줄 서고 돌아온 우드버리 아울렛에서의 쇼핑 일지

추수 감사절 (Thanksgiving)과 크리스마스 (Christmas)로 미국 연말은 들썩 거린다. 미국에서 연말 = 선물 = 쇼핑은 아직 알파벳도 모르는 아기들도 알만한 공식이다. 왜 다들 블랙프라이데이에 지갑을 탈탈 털어낼 수밖에 없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일이 일상인 미국을 잘 표현하는 가판대


    미국은 세일 천국이다. 매장에 있는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쿠폰으로 10%, 회원가입을 해놓으면 종종 이메일로도 25% 등 세일 쿠폰이 아무 이유 없이 온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메이드웰은 계절별로 30-50% 세일을 항상 진행한다.


미국에선 정가로 물건을 사면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다.


심지어 자동차까지 세일을 하는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노동절인 레이버 데이 (Labor day) 등 공휴일마다 항상 큰 폭으로 하는 세일을 노려 좋은 제품을 구매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에서 항상 미국 직구와 세일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있는 미국의 쇼퍼라면 11월 블프를 위해 총알 장전을 해놓을 것이다.




대목은 바로 이제 한 달 정도 남은 11월 말의 블랙 프라이데이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리는 제일 큰 세일 행사라서 모두가 친구와 연인, 가족을 위한 선물 구입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절대 세일을 하지 않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이나 비싼 가전제품까지 정가 제품을 블프에만 할인 판매 하는 경우가 많다. 1년을 기다렸다가 블랙 프라이데이 때 평소 값이 나가고 비싼 제품들을 구매하기도 한다. 


특히 의류 같은 패션 관련 제품들은 엄청난 폭으로 이미 하고 있는 클리어런스 (Clearance) 세일 제품에 추가 세일까지 해준다. 평소 50불 이상하는 기본 티셔츠를 5불에 사는 매직을 경험할 수 있다. 시즌이 시즌인지라 높은 가격대의 겨울 코트들도 몇 번의 추가 세일을 거치면 정가의 절반 이상 혹은 7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에서는 정가 대비 80% 정도는 싸게 사야 쇼핑 좀 하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블랙 프라이데이 (Black Friday)란?

11월의 넷째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의 다음날이다.

세일을 시시 때때로 하고 항상 공휴일이면 세일을 하는 미국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세일폭 때문에 모두가 오프라인 온라인 가릴 것 없이 히든 잼을 찾아 쇼핑에 나서는 날이다.온라인으로도 엄청난 세일을 하는데, 그다음 주 월요일을 사이버 먼데이 (Cyber Monday)라고 한다.


평소에는 나도 '매장 앞에 줄 서서 뭐 해' 하며 심드렁했다. 그러던 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덜컥 블랙프라이데이 쇼핑에 뛰어들었다. 이 전쟁 같은 날 오픈 런하는 매장들은 정해져 있다. 주로 전자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베스트 바이 (Best Buy)와 마이크로센터 (Micro Center) 등이다. 그리고 뉴욕에선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가 대표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우드버리 아울렛 (Woodbury Outlet)이다.



그 추운 동부 겨울 날씨에 새벽 6시부터 오픈런 (Open run)을 한 적이 있다.


뉴욕 우드버리 아울렛에서의 블프 오픈런


    맨해튼에서는 2시간 정도의 거리이지만, 명품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있어 마치 파리의 에르메스 매장처럼 여행온 사람들이 한 번쯤 꼭 방문해보고 싶어 한다. 한국에 아울렛 매장이 거의 없었던 10년 전까지만 해도 뉴욕에 오면 꼭 들려서 쇼핑하는 장소였다.


이 우드버리 아울렛으로 나도 명품 사냥 아닌 사냥을 나간 것이다. 거창하게 가방 같은 걸 사려는 건 아니었다. 나도 남들처럼 명품 브랜드 제품을 뭐라도 저렴하게 하나 건져보고 싶기도 하고, 미국의 블프 쇼핑이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호기심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

2년 전 블프, 새벽 여섯 시에 방문한 우드버리 아울렛인데 입구부터 차가 많았다.


매장 오픈 전부터 이미 오픈 런을 준비하는 수많은 사람들

블프에는 로컬은 물론이고 할인을 잘 안하는 명품 브랜드 쇼핑을 하려고 일부러 찾는 관광객들이 몰려서 더더욱 북적북적하다. 가격이 정말 착한 만큼, 미국의 아울렛은 원래도 매장에 따라 거의 0에 수렴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도 옷을 잘 입거나 명품 아이템을 장착하면 직원이 붙어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서 명품을 산다고 명품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블랙 프라이데이의 아울렛 쇼핑은 도매 시장에서 내 물건을 쟁취하는 분위기이다.




    꼭두새벽 4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아울렛에 도착하니 아직 개장 전인데도 이미 주차장에는 차가 꽤 있었다.

주차전쟁이 시작된 아울렛


심지어 타깃이었던 명품 브랜드 앞에는 이미 줄이 꽤 길었다. 겨울이라 해도 뜨지 않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이었는데 앞에 선 사람의 수만 대략 40여 명 혹은 그 이상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 어마어마하게 사람이 많았다. 어느덧 해가 밝았고, 2시간을 넘게 기다려서야 매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앞서 입장한 누군가가 나와야 들어갈 수 있도록 인원수를 조절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줄 서기 시작한 구찌 매장


아침잠을 포기하고 기다린 게 아까워서라도 뭔가 하나라도 사야 했다.
남아있는 제품들 중에 기본 색은 별로 없었다.

밖에서 오들 오들 떨며 춥고 힘들었기 때문에, 일단 들어서자 고민했다. 세일 덕분에 가격이 좀 착해진 스카프 하나를 골랐다 (나의 생애 첫 명품이었던 이 스카프는 매번 어디 갈 때마다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부츠 같은 것도 40% 이상 대폭 할인을 하는 데다가 블프 추가 할인도 진행하고 있어서 열심히 이것저것 신어보았지만, 편한 게 없어서 포기했다.


다른 매장은 두 번째 시도만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지갑을 봤었는데 막상 살 건 없었다.


첫 블프 나들이인지라 최대한 명품 매장들만 공략했다.


다시 매장을 나와 이번엔 다른 명품 매장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매장들마다 줄이 워낙 길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한 명씩 나누어서 다른 브랜드 매장에 줄을 서다가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가는 전략도 사용했다.


가장 줄이 길었던 매장들은 구찌, 버버리, 발렌시아가, 나이키, 어그, 폴로 랄프로렌, 짐머만, 산드로, 마쥬, 루루레몬 등이었다. 올 때마다 들리던 나이키는 거의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이날 만은 포기했다. 매장마다 한번 줄을 서면 1-2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렸다.


버버리와 막스마라의 코트가 찰떡이었지만, 세일을 하는데도 저절로 내려놓게 되는 가격이었다




    목표했던 명품 브랜드들을 꾸역꾸역 돌아보고 나서야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푸드 코트의 모든 매장 앞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맥도널드의 회전율이 빨랐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주식시장처럼 모두 손을 들고 자신의 번호를 외치고 있었다.

직원들이 모두 서서 번호표를 확인해 주는 진귀한 광경
맥도널드 앞에서 전쟁통에 구호 식량을 확보하고자 하는 난민이 된 것처럼 달려들었다.
 

번호표를 가지고 음식을 잽싸게 가져가는 풍경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는 점잔 떠는 미국인들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사이사이 끼여있는 모습은 평소 보기 힘든 광경이다.

작은 틈 사이로 음식을 받는 모습이 마치 전당포 같이 느껴졌다


겨우 서있을 곳을 찾아 치즈버거를 빠르게 해치웠고 2차전을 시작했다. 힘들어도 멈출 순 없었다.

바쁠 때 역시 맥도널드가 최고다



총 13시간을 거친 대장정이 끝났고 나의 영혼과 통장은 하얗게 불탔다.


    그렇게 거의 10개가 넘는 브랜드들을 다 돌아보고 나서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오후 여섯 시 사십 분.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났던 것인지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얼마나 저렴한 지도 궁금했고 혹시 나도 뭔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보았던 블프 쇼핑이었는데 어느새 내 손에는 양손 가득 쇼핑백이 잔뜩 들려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아닌 것 같은 대단한 체력과 의지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세일들이 항상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힙하기로 유명한 한 가방 브랜드는 이런 블랙프라이 데이의 무분별한 소비에 반하여, 하루 동안 아예 가방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럴거면 가방 가격이나 내려달라는 댓글이 많았지만 말이다.


미국에선 평소에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세일한다는 이유로 구매했다가 나중에 카드목록을 보고 골똘히 고민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샀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카드 회사에 신고해야 되나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연말 홀리데이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이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진지하다. 9월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쇼핑을 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6개월 전부터 가족들 선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게다가 휴일을 매번 챙기는 편은 아닌 나 또한 매년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소 강제적으로 즐겨야만 하는 미국 생활이다. 마치 한국의 추석과 설이 가족 간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르는 것이 마냥 쉽지도 않고 어떨 땐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것 또한 미국에서 살아가는 재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는 어쩐지 무소유를 지향하고 싶어 진다.

왁자지껄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올해는 쉬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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