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과의 인연은 16년 전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시작된다. 아마 <주홍색 연구>라는 셜록 홈즈 단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홈즈의 절친인 왓슨 박사가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한다. 하지만 어깨에 총탄을 맞고 인도로 후송되는데, 몸이 쇠약해져 그만 이 병에 걸리고 만다. '이 병' 때문에 왓슨 박사는 영국으로 돌아와 룸메이트로 홈즈를 만난다. 소설에서는 친절하게도 '이 병'이 죽음의 병으로 불린다고 설명해놓기도 했다. 당시 어린 시절에 셜록 홈즈 시리즈에 푹 빠져 있으면서 무의식적으로 했던 생각이, '이 병만큼은 절대 안 걸릴 것 같아'였다. 그리고 16년이 지나서 왓슨 박사가 영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굳이 필요 없는데) 알 수 있게 되었다.
소년 시절 상상했던 셜록 홈즈의 외모와는 다소 많이 다른 BBC의 셜록 홈즈
우리나라에서도 '이 병'은 매우 무서운 병이었나 보다. 치사율 1/4 이상이었던 이 병은 한여름에 걸려도 이불을 꽁꽁 싸매고 벌벌 떨어야 할 정도의 오한과 고열, 그리고 머리가 듬성듬성 다 빠지는 증상(이 병이 정말 무서운 이유)으로 몰골이 흉측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니 치사율과 흉측한 몰골, 전염성이라는 질병의 3박자를 두루 갖춘 이 병은 아직까지 이토록 찰지게 우리 입에 오르내릴 만하다. 왠지 모르게 '염병'이라는 발음이 지니는 특유의 기분 나쁨이 있다. 염병은 전염병의 준말이지만 동시에 왓슨 박사가 걸렸던 장티푸스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걸려 있는 병이기도 하다.
우간다에서 고열을 맞이한다는 건 생각보다 사람을 더 겁나게 한다. 처음 열이 났던 게 지난주 토요일 저녁이었다. 넷플릭스를 한참 보는데 조금씩 몸이 뜨거워졌고, 빈지워칭이 주는 영광의 상처라고만 생각했다. 잠이 들고 다음날 일어났지만 열과 어지러움은 멈추지 않았다. 그제야 겁이 났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당연히 말라리아였다.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숫자가 1년에 대략 3000만 명이라는 것이 쓸데없이 생각났다. 말라리아 키트로 검사를 실시했다. 여담이지만 사람이 독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냐 묻는다면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내 손가락을 따는 순간'을 꼽고 싶다. 손톱 밑 가시에도 온 힘을 다해 아픔을 표현하는 나인데, 내 손으로 직접 바늘을 찔러 피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심지어 혈액을 투여해야 할 곳에 용액을 넣고, 용액을 넣어야 할 곳에 혈액을 넣어버리는 바람에 네 개의 손가락을 출혈의 희생양으로 삼아야 했다.
보통 5~30분이면 테스트 결과가 나오지만 혈액과 용액을 잘못 투여한 탓인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훈련소에 입대한 첫날밤 이후 가장 불안한 밤을 보냈다. 고열과 오한이 반복적으로 동반되었으니 조금 더 기억에 남을 만한 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끝내 종합 병원으로 간신히 몸을 가누며 갔다. 아마 거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 모든 전제가 도전받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야속하게도 병원 다녀오니 무심하게 한 줄 그어져 있는 말라리아 검사기. 30분이 아니라 12시간이 걸렸다. 한 줄은 음성, 두 줄은 양성.
증상을 말하고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기 위해 처음 의사와 마주했는데 흑인 의사였다. 우간다에서 흑인이 의사인 게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한국인이 의사였던 환경에서만 자란 터라 이것이 자연스럽지만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지니고 있던 Racism을 처음 마주한 것이다. 내가 아는 흑인 의사라고 하면 2018년에 노벨 평화상을 탄 드니스 무퀘게가 전부였다(그마저도 노벨 생리의학상이 아닌 노벨 평화상이잖아!).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탈북민을 인터뷰했던 적이 있다. 그 탈북민은 자신이 말할 때 북한 특유의 말투가 나오면 환자들이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갑자기 거둔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가 딱 그런 확증 편향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잠시나마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나 자신이 싫었던 터라, 아프고 정신없는 와중에 그들에게 더 다정하게 굴기 위해 애썼다. 의사에게 증상을 말할 때도 최대한 예의를 표하면서 상세히 설명했고, 피를 뽑는 간호사에게도 당당하게 웃으며 팔을 건넸다.
사실 병원 시설은 좋았다. 진자 지역에 있는 종합병원인 Nile Interantional Hospital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한 시간 가량 걸렸던 것 같다. 사실 그때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고 어지러워서 정확한 시간을 기억해내기는 어렵지만 내 체감상 그랬다. 어렵사리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친절했던 그 의사는 "Have you ever heard about typhoid?"라고 물었다. 앉아 있지 못하고 책상에 거의 엎드려서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검사 결과지에 친절하게 Bacteremia Typhoid Fever라는 병명을 써주었고 수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의사가 안쓰러워하면서 당장 열을 내릴 수 있는 주사를 맞을 것을 권했다. 물어볼 것도 없이 Please였다. 허리가 아프고 온 몸이 저린데 머리는 어지러웠다. 이렇게 다양한 신체에서 애를 쓰는데 뭐라도 그들에게 대접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엉덩이 주사를 맞고 오른쪽 다리에 멍이 든 느낌처럼 아파서 누워 있었고, 나는 Typhoid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그제야 Typhoid가 장티푸스란 걸 알았다.
내가 아픈 사실을 알고 학교에서는 내 아픈 소식이 이렇게 퍼졌다. Igambi는 내 루소가 이름.
이 병을 처음 발견한 의사의 이름일 줄 알았던 장티푸스는 사실 '장(腸)'과 'Typhus 균'이라는 다소 난해한 결합의 산물이었다. 심지어 티푸스 균체와는 상관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전부터 쓰이던 병명인지라 그대로 쓰인다는 TMI.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내가 왜 걸렸을까'였다. 한국에서 장티푸스 예방 접종까지 했음에도 걸렸다는 억울함이 더해져 원인 추적에 대한 욕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장티푸스는 1~2주 정도의 잠복기 후 증상이 나타나는데, 주로 오염된 물이나 대소변에 의해 감염된 무언가에 의해 발병한다는 것이 최종적인 설명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나를 아프게 하는 이것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좀처럼 원인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샤워하다가 수돗물이 혹시 입으로 조금 들어가 버려서? 로컬 마켓에서 사 먹은 롤렉스 때문인가? 야외 테라스에서 피자를 먹다가 재수 없게 오염된 파리가 앉았기 때문인가? 안전하다고 느낄 만한 상수가 없었다. 아리수로 장티푸스에 걸릴 확률은 희박하다는 그 전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꼈다. 이곳에선 의심을 마음 편히 거둘 만한 것이 없었다. 불신이 커서 질병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인지, 질병의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주위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건지 그 전후관계를 따지기란 불가능하지만, 뭐가 됐건 내 안에 지니고 있던 불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말로는 우간다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했지만, 장티푸스는 내 안에 지니고 있던 이곳에 대한 불신과 불확실성, 심지어 편견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몸은 장티푸스로부터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장티푸스로 확인한 내면의 편견과 불신은 과연 나을 수 있는 것일까. 장티푸스에 걸렸던 신체보다 위선적인 내면을 본 정신이 더 무기력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