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첫 소설 수업 수강기
1998년 개봉한 불후의 명작 <트루먼 쇼>. 2005년 TV 전파를 타며 시골의 한 중학생도 보게 되었다. 중2병 말기 환자였던 학생은 생각했다. 이 영화, 혹시 나에게 보내는 신호인가? 이 세상도 내가 주인공인 몰래카메라? 잠시 망상에 빠졌던 그는 세수하고 거울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그럴 리가. 얼굴 평범, 재능 없음, 취미가 독서인 것치고는 성적도 그냥저냥. 이런 내가 세상의 주인공일 리 없지.
그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주인공인 세계가 필요했다. 우주 먼지 수준의 고민도 행성 충돌이 되는 내 작은 세계. 이 속에서 답 없는 문제를 풀어가는 주인공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남에게도 재밌게 쓰려니 저절로 에세이가 되었다. 아무리 써도 질리지 않았다.
참 많이도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글이 쌓이고, 그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가끔 마주하게 됐다. 솔직하고 재밌어서 좋다는 칭찬에 어깨가 솟았다. 그래, 내가 글은 좀 쓰지! 어느새 글부심이 생겼다. 취직도 그 글부심으로 했다. 회사에 필요한 글을 쓰다 보니, 이제 웬만한 글은 어느 정도 쓰겠다 싶었다. 감히 생각했다. 이제 제법… 해치웠나?
퇴사하고 여유가 생기자마자 8주짜리 소설 기초반에 등록했다. A4 3장 넘지 않는 짧은 소설을 쓰는 반이라 한결 부담이 덜했다. 사실은 예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내가 오르고 싶은 산이었다. 엄청 높고 험한 산, 하지만 등산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 목표로 두는 산. 내가 여태 넘은 산들이 동네 뒷산이라면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은 에베레스트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글부심이 차오른 나는 무모했다. 이제는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설렜다.
그 설렘은 딱 5주 갔다. 첫 4주 소설 이론 배우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재밌었다. 선생님에게 이 수업 다음으로는 뭘 들으면 좋겠냐며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개강 2달 전 마감된 입문반 수업에 대기 8번으로 등록해두기까지 했다. 인생 첫 소설을 합평한 5주차에는 해냈다는 뿌듯함이 하늘을 찔렀다. 문장은 좋은데 내용이 부족하다, 작위적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같이 내용이 없다는 피드백을 받아도 괜찮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 처음인데 이정도면 잘했어.
잘하긴 뭘 잘해. 첫 술에 배부른 문우들의 작품을 합평하는 6주차부터 뿌듯함이 와장창 무너졌다. 내 소설은 장점 반, 단점 반이랬던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에겐 재능이 있다고, 계속 써 보라고 결이 다른 칭찬을 했다. 이 차이를 눈치채고부터 시무룩해졌다. 내가 소설을 진짜 못 쓰나 보다. 사실은 글 자체를 못 쓰는 걸까? 아냐, 그러기엔 에세이를 엄청 많이 썼어. 내 이야기는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오래오래 고민했다. 1주일 내내 밥 먹고 그 생각만 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나는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라 소설을 못 쓰는 거였다.
반평생 써온 에세이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였다. 주인공의 생각을 해석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작가는 조연은커녕 엑스트라도 될 수 없다. 독자가 주인공인 글을 쓰려면 남을 관찰하고 해석해서 묘사해야 한다. 남을 알려면 나에게 없던 네모난 창문을 내야 한다. 에세이를 쓰면서, 나만 들여다보면서 쌓아 온 단단한 벽에 창문을 낼 수 있을까? 엄두도 안 나는 대공사다.
+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여름 님, 소설 쓰는 거 어때요?”
“아…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재능도 없고,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소설을 못 쓰는 사람인가 싶어요.”
“그래요? 지난번에 대기 걸어 놨다는 입문반 수업, 한 자리 나서 여름 님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헐! 진짜요? 그럼 들어야죠!”
“소설쓰기 그만둘까 고민이라더니?”
“그치만 이런 기회 또 없으니까…!”
나도 모르겠다. 무슨 생각으로 백수에게 큰돈인 50만원을 단박에 결제했는지. 단순한 오기일까, 창문을 낼 각오를 한 간절함일까. 아무튼 이 이야기는 좀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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