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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May 26. 2019

임신 중기의 우울감을 기록하다

너굴양 임신일기

너굴양 임신일기

요즘 우울하다.


우울해서 바다에 갔다(feat.임산부치마)



임신 중기(12주~27주)는 초기보다 정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훨씬 좋아지기 때문에 '날라다니는' 시기라도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초기보다 좋다는거지 임신 전처럼 쌩쌩하진 않으니까. 물론 케바케이고 20주 찍으며 컨디션이 놀랍게 좋아졌다는 후배 이야기를 몹시 믿고 싶지만.(지금 19주)


아무튼 우울한건 사실이다. 원래도 큰 일을 치르고 한참 있다가 멘붕이 오는 성격인데다가(감정처리가 굉장히 느림) 우리 부부는 콩볶듯 결혼준비를 마치고, 결혼 하자마자 제주에서 혼인잔치, 바로 첫 명절(다시 서울에서), 바로 임신까지, 초대형 압축파일을 몇 달 새에 줄줄이 풀어버린 겨울을 보냈기 때문에 나는 임신 초기 우울감이 그냥 임신 때문인줄 알았다. 저런 일들을 줄줄이 해치우고 마냥 평온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맞은 임신 중기, 나는 우울하다. 

기분이 좋은날이 반, 우울한 날이 반. 

여러모로 든든한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그냥 나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감사하게도 아직 '생각'이란걸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있다)


애기 딸랑이 만들었다, 근 20년만의 바느질



우선, 몸이 많이 변한다. 


안그래도 비옥한 중부지방이 임신과 동시에 에너지원이 집중되는 '센터'가 되었다. 배가 나오면서 허리도 없어지고 뱃고래가 둥실둥실 해졌다. 임신하면 다 배 나오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거울을 볼 때 마다 시무룩하다. (미친듯이 배가 나오는 만삭이 되면 그런 마음도 없어진다고는 한다, 왜냐면 너무 비현실적으로 많이 나오니까) 심지어 얼굴과 팔 같은 곳은 살이 내려서 점점 ET같이 되고 있다.


생전 안나던 뾰루지가 얼굴에 들어앉아 방 뺄 생각도 없고, 조금만 피곤하면 다크서클이 줄줄 내려온다. 매일아침 톤업크림(낯빛을 밝게 해줌)을 얼굴에 바르며 생각한다. 내 원래 피부톤은 어디로 갔지?


임신 중기에 느끼기 시작하는 태동은 무척 즐겁고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자궁이 커지느라 하루종일 아랫배가 쑤신다거나, 조금만 오래 걷거나 서 있으면 자궁이 밑으로 빠지는 것 같고,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금세 숨이 차는건 즐겁지 않다. 아기가 내 몸 안에서 큰다는 건 이런 몸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다. 배가 더 커지면 허리가 더 아플 것이고, 다리가 더 잘 부을것이다. 이제 잘 때 바로 누워 자면 배가 땡기고 옆으로 자면 어깨가 눌려 엎치락 뒤치락 잠을 설치게 된다. 이 변화를 내 몸이 다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역시나 내 마음은 한박자 늦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참 둔하다..)


사람들이 임산부를 떠올리면 보통 '만삭'상태이다. 나도 그랬다. 혹은 초기의 티가 나지 않는 무척 힘든 시기를 생각한다. 하지만 몸이 임신에 적응하면서도 매일 같이 변하느라 정신이 없는 임신 중기는 뭔가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 같다. (그래서 경험자들은 다들 지금을 즐기라고 ㅠㅠ)



열심히 일을 못해 이녀석아


집중력은 안드로메다행 급행 열차를 탄다. 


일을 잘 못하고 있다. 무척 더디게 하고 있다. 모니터를 오래보면 눈도 침침하고 저녁이 되면 집중력이 더 흐려진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 쉬고 싶지만 그게 매일 그렇게 되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는 날에는 시간도 아깝고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도 아쉽다. 마음에 따라 몸 컨디션이 쉽게 바뀌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다.


일을 안할 수는 없나?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내가 약속한 일은 해야하고 출산 전까지 내 몫의 경제활동도 하고 싶은게 내 욕심이다. 그리고 몸에 아주 무리가 되지 않으니까 하고 있기도 하고. 임신한 몸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는 무척 기쁜 일이다.


몇 주 후엔 또 어떤 소리를 해댈지 모르므로 기록해서 남겨둔다.

(페이스북에 먼저 씀)




며칠 전에 썼던 글이다.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었고 조언도 해주었다.


사실 매일같이 우울하진 않지만 때때로 밀려오는 우울감이 있는건 사실이다. 전에는 그걸 모른척했다면 요즘은 '아, 오는구나'하고 반길 정도로 자주 온다. 어떤 날은 힘들고, 어떤 날은 지낼만 하고, 또 어떤 날은 잊어버린다.

임신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감정의 흐름이지만 임신했다는 사실 자체로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땐 자꾸 생각하게 된다. 임신은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한 것이구나. 


축복이니 즐거움으로 기다리라는 말은 사실 와닿지 않는다. 안그런 엄마가 어딨나. 꿀럭대는 아기의 태동 한 번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아기는 괜찮은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임산부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불안감은 누가 해소해줄 수 없고, 스스로 마주하는 것이기에 자기의 감정을 글로 풀어내거나 생각해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건 소중하다. 


배우자와 이런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다. 우리는 결혼 후에 '괜찮은 척'하는 것이 결국 더 큰 싸움을 일으킨다는 걸 깨닫고 지금의 기분이나 상태를 자주 공유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더 배려할 수 있었고,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미친사람처럼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나 오늘 기분이 우울해'라고 미리 얘기할 수 있으면 감정의 폭발이 있을지라도 화력이 약해지고 당하는(?) 사람도 덜 당황하게 된다. (물론 그러지 못한 날도 있지만 뭐...잘 보면 배우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금 짜증이 났는지 기분이 괜히 좋은지 대충 알 수 있다)


글을 공유하며 공감도 많이 얻은걸 보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놀랍게도 글을 쓰고 나면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해소되기 때문에 글이 주는 치유의 힘도 느낄 수 있고 실제로 금새 잊어버린다. 나도 임신 초기의 두려움과 불안함은 많이 잊어버렸다. 오히려 옆에서 바라보던 남편이 그때와 지금의 너는 천지차이라고 할 정도로 다르다고 한다.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잠을 좀 많이 잤다는 정도?' 라고 했다가 아이고...그러니 나도 만삭이되면 지금의 감정을 잊을 것이고 아이를 낳으면 '제발 좀 나와라!'하던 만삭의 시간을 잊겠지.


잊혀지고 흘러갈 감정을 기록해둔다는 건 임신이 내 인생이 그만큼 지대한 사건이라는 방증이다. 그만큼 나는 둥둥이를 뱃속에서 키우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이 우울한 감정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을만큼 기쁘다.


요즘 많이 가는 교래 곶자왈, 태교산책에는 최고다 (태동도 엄청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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