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수필은 왜 “솔직해야 한다”라고 말하는가

- 솔직하게 쓰세요

by 네로

*표지의 사진은 AI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수필을 쓰려하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솔직하게 쓰세요.”

이 말은 친절해 보인다. 글을 어렵게 만들지 않겠다는 배려처럼 들리고,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이 말은 생각보다 무겁게 내려앉는다.


솔직하게 쓰라는 말은 결국 이런 뜻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당신의 진짜 이야기를 꺼내보라, 숨기지 말고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써보라는 요구. 문제는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무엇이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그대로인지, 그 기준은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다.


나는 처음 수필을 쓰려고 앉았을 때 이상하게도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써야 할지는 알 것 같았는데,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건 써도 될까, 이건 너무 개인적인가, 이건 변명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 문장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을까. 문장은 나오지 않았고, 대신 질문만 늘어났다.


그래서 솔직해지라는 말은 나에게 자유가 아니라 경계 없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디로 가도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알아서 걸어보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수필에서 말하는 솔직함은 사실 감정의 양이 아니다. 많이 울었다고 해서 솔직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픈 이야기를 꺼냈다고 해서 진실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필을 어렵게 만드는 건 다른 질문이다. 이 이야기를 내가 해도 되는가, 이 삶을 내가 말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수필은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은 채 자기 삶을 꺼내놓아야 하는 글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수필에서의 솔직함은 기술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기로 했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상태에 더 가깝다.


어떤 사람들은 수필은 일기와 다르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 설명은 늘 조금 부족하다. 일기는 나에게만 쓰는 글이고 수필은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라는 구분은 간단하지만, 막상 쓰는 사람의 마음은 그 두 지점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너무 숨기면 거짓말 같고, 너무 드러내면 노출처럼 느껴진다.


수필을 쓰는 일은 자주 중간에서 멈춘다. 나 역시 한동안 ‘솔직한 수필’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오히려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솔직해지려는 순간마다 문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수필이 요구하는 솔직함은 모든 것을 말하라는 뜻이 아니라, 말하지 않기로 한 것까지 스스로 알고 있으라는 요구라는 것인 듯하다.


그래서 수필은 어렵다. 기억을 꺼내는 일보다 기억을 정리하는 일이 더 어렵고, 감정을 느끼는 일보다 감정을 언어 위에 정확히 놓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수필은 솔직해지는 글이라기보다, 솔직해질 수 없는 이유를 끝까지 들여다보는 글에 가깝다.


1부를 시작하며,

혹시 지금 수필을 쓰려다 멈춘 적이 있다면, 그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볍게 대하지 않고, 고민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떻게 쓰는지를 말하기보다, 왜 멈추게 되는지부터 같이 바라봐요.

월, 수, 토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 - 브런치북을 여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