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많은 사람이 꼭 수필을 잘 쓰는 건 아니다.

- 감정을 쓰는 일과 감정을 바라보는 일 사이

by 네로

*표지의 사진은 AI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내가 수필을 쓰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감정이 풍부해서 잘 쓸 것 같다는 말이다. 그 말에는 격려의 뜻이 담겨 있고, 나 역시 한때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면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감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수필 앞에서도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필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감정이 많다는 사실과 감정을 글로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었다. 감정은 순식간에 차오르지만, 문장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클수록 문장은 더 자주 멈췄다.


감정이 많은 상태에서 쓰인 문장은 대개 이런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날 나는 너무 힘들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무너졌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문장은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느낀 감정일 가능성이 크고, 쓰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솔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문장을 읽는 사람은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알기 어렵다.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전해지지만, 무엇이 남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감정은 전달되지만, 그 감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문장은 멈춘다.


감정이 많을 때 글은 감정의 높낮이에 끌려가기 쉽다. 말은 많아지지만 중심은 흐려지고, 설명은 늘어나지만 정리는 되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 지보다 무엇이 아픈지가 먼저 나오고, 문장은 감정에 휩쓸린 채 방향을 잃는다.


같은 장면을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바라보면, 문장은 달라질 수 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힘들었다는 말보다 먼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는 설명하지 않으려 애썼고, 이해받으려는 마음도 미뤄두었다. 아마 그 침묵이, 그날의 내가 견딜 수 있었던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 문장에는 감정의 양이 줄어든 대신 하나의 시선이 생긴다. 그날의 나를 바라보는 지금의 내가 등장하고, 감정은 더 이상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정을 바라보는 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수필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아팠는지가 아니다. 그 아픔을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가 문장을 만든다. 수필은 감정을 쏟아내는 글이 아니라, 감정을 다시 바라보는 글에 가깝다. 울고 난 직후보다, 울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문장이 시작된다.


감정이 많다는 것은 수필의 조건이 아니라 재료에 가깝다. 재료가 많다고 해서 요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길지를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필은 그 판단의 시간이 고스란히 문장 속에 남는 장르다.


그래서 감정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수필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해질수록 문장은 더 단단해진다. 감정을 느끼는 능력보다, 감정을 정리하는 태도가 수필을 만든다.

수필은 마음이 많은 사람의 글이 아니라,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본 사람의 글에 가깝다.

월,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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