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위는 붉은 강과 하얀 강이 만나는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바위는 자리에 앉을 때마다 강 위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다. 이 아지랑이의 짙은 정도를 잘 살피면 하늘에서 달이 내려오는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바위는 언제나 달이 편히 내려올 수 있도록 아지랑이를 부드럽게 퍼뜨렸는데 이는 달이 자신의 하강으로 땅의 의식을 깨뜨릴까 늘 걱정했기 때문이다. 일렁임이 모든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때 쯤 하얀 달은 옅은 빛을 띄며 바위 가까이 천천히 내려와 바위와 빙긋 인사를 나눈다. 바위는 땅에서 본 하늘의 이야기를 전하고 달은 하늘에서 본 땅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참의 시간을 보낸다.
윤이는 잠시 멈춰 서서 아지랑이의 상태를 살폈다. 아직 달이 내려오지 않은 듯했다. 이 구역을 빠져나갈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었다. 윤이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오고 있는 거야? 아니면 우연이야?”
그녀는 아지랑이 속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낸 도의 꼬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도는 묵묵히 윤이의 시선을 피했다.
“좋을 대로 해.”
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뒤에서는 도의 꼬리가 종종거렸다. 아마 한 동안 여정을 함께할 모양인데 언제 또 도가 사라질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언제나 마음 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존재였으니까.
갑자기 아지랑이가 짙게 피어나 이정표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저만치 보이는 초록 달이 나침반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윤이와 도는 검은 바위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아지랑이 속에서 하얀 달의 동그란 모습이 슬쩍 보였다. 이제 달과 바위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윤이는 잠시 그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