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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무(치악산 향로봉)

- 설원 (雪原)

by 갈대의 철학


길동무(치악산 향로봉)

- 설원(雪原)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설원을 등지고

겨울에 태어 난

하얀 눈송이보다 더 맑고 순수했던

커다란 두 눈망울에

금세 울어버릴 것 같았던

하얀 눈보라 속의

흰 사슴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그 흰 겨울을

유난히 사랑하였던 그 아이

그 아이의 눈물 맺힌 이슬은

낙화되어 설꽃을 피웠다

눈바람은 눈 꽃이 되어 설산을 만들고

하얀 설산은 깊어가는

이 겨울 어느 노인의 고뇌에 찬

백발이 되어 무성해져 간다

그 위에 백로 아닌

까마귀 한 마리 날아들어

향로봉에서 갈 곳을 잃었네

찬연한 제 눈 꽃 위에 피어나는

설상의 자태에

수묵화의 한 점의 정점을 찍은

너는 외로움에 깍 짖어대는 소리마저

눈보라에 묻혀 들리나 싶더니

어느새 다시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안개 길 따라 올라오는 이 길이

길을 잃을세라

염려되는 발 길도 아니오

계곡길 물소리 따라

산속을 걸으며 걸어가는 이 길도

내님의 소리 마냥

젖어들어 따라간 것도 아니라네

천년 고도의 숨은 발자취가

안개와 눈보라 속에 갇혀버렸구나


2015.12.26 치악산 향로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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