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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May 10. 2020

바나나 사탕

- 어머니 손길

바나나 사탕

- 어머니 손길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사탕 세 개 건네준 손

세상에 어떠한 손길보다 따스했어

어머니 손길을 느껴보았으니까

세월 지나 면 알게 될 거라는 말씀

지나오고 나면 청개구리 하던 짓을 하고

그래도 돌아오면

가로등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

먼발치서 바라볼 때면

어머니의 한쪽 그늘진 색채화에

플래시 터지듯 초상화를 그린 듯했네




이야기


지하철 계단에서

양쪽 손에 봇다리  하나 가득 들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을 오르셨네


이윽고 지하철을 기다리던 나에게

수원 가야 하는데

어디서 타야 하냐고 물으시고

병점으로 가야 한다고

딸내미가 서동탄이 집인데

병점에서 차를 타고 기다린다 하네


어머니

지금 오는 지하철이

수원지나 병점 지나

종점이 서통탄 가는 기차예요

마치 잘되었다며

연거푸 몇 번을 물으시고

혹시나 다른 기차를 탈까 봐

노심초사하시었


청량리에서 서동탄까지 1시간 24분 걸려요

잠시 후 지하철 내에서는 텅 빈 의자에

드문드문 사람은 듬성듬성 꽃피듯 하네


포천에서 딸내미 손주 봐달라고 가신다고 하시며

이른 새벽 바쁜 발걸음 총총 내주신

두 손으로 손수 따뜻한 보리차도 건네주시고

괜찮다며 먼길 가시는데 두었다 드시라고

그래도 아니란다 아니란다

세상사 인지상정이 그래서는 아니 된다


바나나 맛이 담긴 사탕 세 개를 주시며

그중에 하나를 입에 넣었다

공간에 조그맣게 차지한

달콤한 사탕 하나의 위력

배고픔을 잊게 한다


몇 정거장 뒤 내리기까지

지나온 몇십 년의 세월보다

 5분 동안에 나눈 대화가

실로 우리가 잊혀 왔던 

지난 어머니의 세월이셨네

덕담 한마디였으리라


내리면서 연신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실 때

나는 알았네 슬퍼했네

내 지나온 자리에 마음이

이제야 평온한 자유가 찾아왔다는 것을

나는 내리는 문에 어머니 다칠세라

뒤를 돌아보며 어서 들어가시라

말 대신 눈짓으로 한 마음 두고 내렸네


2020.5.10 청계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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