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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Jan 20. 2021

더 높이 오르면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을까

- 화악산 가는 길에서

더 높이 오르면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을까    

- 화악산 가는 길에서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오늘은 반대로 가보려고 한다

무엇이 보이는지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마음이 가는 것도 아니다

꽃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것은

나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 순간은

감미로운 멜로디도 아니하며

지나가는 옆을 스치는

어느 이의 발자국 소리도 아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그들에게 인사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선잠을 깨울까 염려되면서

곁을 조용히 지켜줄 뿐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올려다보는

내 마음이 이미 벌써

그곳을 향해 다가가는 것도 아니요


올려다보는 것만도 아니요

더 높이 올려 보아야

그 마음의 높이를

잴 수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내 발자국 머문 자리와

내 마음이 거처했던 자리와

그대 향기가 구름에 머물러

바람에 따라 다시 떠나는 것처럼


모든 떠남은

예고된 만남에서 시작되며

만남의 자리는

늘 상 지워지기 마련이거니와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지라

흔들리는 갈대처럼

바람 따라 떠나가니 말입니다


더 높이 오르면

더 멀리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질없고 덧없는

우리네 인생사

전체에 한 점의 획을 지나 스쳐갈 뿐입니다


운무에 잠시 가려졌던 태양아

이른 새벽에 아카시아 향기가  

저 햇살아 녹아 사라지지 않도록


네 안의 향기를

품어줄 수 있으면 좋겠구나

늘 처음의 시작과 끝이  

똑같을 수가 없고 다른 것처럼 말이다



2013.6.2  화악산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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