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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Apr 09. 2021

거울

- 먼지

거울
- 먼지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벌써 세월에 녹아내려

검은 반점에 너무 지친 모습

내 얼굴이 아니었어


내 살아온 인생에

거울에 비춰 본

나의 또 다른 분신의 자욱들


세월 따라 얼룩져 가는

미련의 흔적들


잠시 후 불을 켜고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아보았어




너 정말 나였니


나 아닌 또 다른

자아가 거기에 있었어


그것은 처음과 다른

나의 예전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어갔던 거야


내 살아온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아닌

또 다른 너였기를 바랬을지도 몰라




갈대의 철학 연대기(1)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그분께서

늘 한쪽 가슴에 응어리진 듯

평생을 한 여린 마음을

간직하며 사셨지요


그러면서

삶의 이정표가 어디인 줄을 모르고


마냥

천지 난만한 얼굴로

한 평생을 주름진 얼굴 하나

펴지 못하시고


기어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인 은하 역에서

내리지도 못하시고

오리온성운의 별자리로 떠나갔습니다


그 한분이


나를

저를

이렇게 어렵게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으니까요



갈대의 철학 연대기(2)



나는 이렇게 태어났지

어머니

나 보기가 역겨워

바라볼 수가 없었다고 말이야


첫 탯줄을 하늘에 명을 다해

새끼 동아리 줄 매달듯이

칭칭 동여매어 태어나고


머리 가마

셋 쌍가마 타고

장가 세 번 간다고 놀림당하고


태어날 때 울지를 않아

애가 죽은 줄 알았다는


그래서 나의 사촌 외숙모께서

애가 죽었다고 기절초풍하시고

나의 어머니

그렇게 보기 싫어했던 한 아이를

하늘의 운명이 다했는지


온 사지가 늘어져 바라보았던

한낮의 고요한 산속에서

울러 퍼진 또 다른 짐승의 울부짖음을


그래도 운명 같은 연이었을까?


어머니와 나를

그렇게 갈라놓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게 삶이고

모질다는 인생이 되어왔다고


하늘에 명을 둔 운명

타고난 숙명 이어야만 하였던가


이후로

난 평생을 어머니 따라

절에 공양미 떨어질라

바람에 쓰러진 축담 쌓이기도 바빠


어김없이 돌고 돌아오는

셀 수 없었던 시간의 마음들을

추스를 시간도 없었으리


하며,

백팔번뇌에 절에 맡겨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고

늘 말씀을 더하셨어


보를 뒤집어쓰고 태어났다면서

타고난 업보를

위로받기 위해서였다고 말이야


그래서

평생의 업보를 짊어지며

남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예단할 수 없었던 기이한 타고난 운명을


까마귀보다 더 새까만

지옥의 저승사자도 무서워한 모습으로

보릿고개 먹지 못해

까마귀에게 살점 하나 던져주지 못한

앙상한 전라의 나무들처럼


그렇게 또 등짝에 커다란 둥그런

낙관을 찍고 나왔으니

이 얼마나 빡빡한 세상에

어머니 날 낳으시라 얼마나 미워했으리오


그렇게 나의 연대기는 시작되었단다


나의 인생아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운 연인아

보고싶다. 청춘아


나의 별자리

2021.4.7  남한강 & 아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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