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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의 일생

- 어머니와 김장

by 갈대의 철학

배추의 일생

- 어머니와 김장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겨울을 기다리고

가을을 떠나보내는 날에

씨 뿌리고 파종을 함 세나


딸 랑 무 심고

배추도 심어

백일 간의 정성과 사랑도

함께 심어 봄 세나


하늘에게 비나이다

천지신명께도 비나이다


우리 엄니 자식 사랑에

백일 간의 치성을

밤낮없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세상에 빛을 보게 하시었소

세상에 백일을 견뎌 내게 하시더니

세상에 모든 마음을 담아 주시었소


그래서 이 자리에

일식 삼 찬을

그대를 위해 차려놓았소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올 가을엔 만석꾼의 마음도 아닌

딸랑 무 한 개와

배추 한 포기의 마음이 되게 하시오


그냥 이대로

울 가족 엄동설한 겨울 잘 지낼 수 있게


김치 한 종지에

찬 물에 밥 말아먹을 수 있는

휘휘휘 휘저어 먹고 나면

속이 후련하게 떠나가는

동치미 한 사발에 백치의 마음도

함께 담그고 떠나가 주시오


만추가 지나고

서리가 내리고

입동이 들어선 후에


나의 마음 한 조각에

어머니 당신의 십팔 세 꽃다운 청춘이

지나는 계절이 돌아왔소


어느 도야 꽃이 지고 익어가는 칠월에는

천상의 색감을 입고 떠난

도야의 향기로운 맛이

생각나게 할 때쯤이면


나는 아직도

그 향기에 불어오는 가을바람 소식을

잊을 수가 없다오


해마다 철마다 다시 돌아오는

집 떠났다 돌아온 전어의 계절이여

어머니 손맛이 그리운 계절이여

돌아오라


저 하늘 떠도는 구름 한 점의

미더운 마음을 알아갈 때쯤이면


추억을 소환하고

바다 냄새 자욱 굴 캐러 떠난

소식이 아직도

저만치 구름처럼 흘러가지만


아득하기만 하던 마음은

갈길이 저만치 멀기만 하는데

손길 따라

돌아온다던 마음은 어딜 떠나갔소


그 마음을 대신할

듬뿍 바다 마음 저려놓은 바다를 품은

어머니 손맛의 배추여


그 맛이 생각나고

그날을 기억하듯 할 때는

어김없이 돌아오고 전해져 오는

내 그리운 소싯적 고향의 향수가

생각이 나는 배추는

다시 돌아오라


꼬깽이 꼬깽이 노랗게 익어가는

배춧잎 꼬깽이 절여놓아

세월 지난 울 엄마의 주름진 얼굴처럼

겹겹이 쌓여 포개진 어머니 품속의 마음이여


자꾸만 생각이 나오

자꾸만 회상에 젖게 되는

그날을 돌아오게 하는 배추의

일생이 된 삶을 나는 또다시


김이 모락모락 굴뚝에 나무 때듯

올라온 따뜻한 밥상 위에 놓인 김치를

바라볼 때면 그날의 회상에 젖어

아직도 눈물을 머금고

배추를 절여놓고 가슴에 기다리고 있소


어느덧 나의 뭍 밭에도

잘 고와 삶은 수육 한 접시와


어느덧 된서리 맞은 배추를

소금에 절인 토실토실 속살이 꽉 찬

어머니의 마음처럼


노란 배추 꼬깽이 배추 한 잎 뜯어서

양념에 풍덩 담가 입에 넣다 보면


그 옛날 옛적에 겨울밤 이야기 들려주는

맛과 멋을 나는 아직도

따뜻하고 그리운 손길을 잊을 수가 없으오



2022.11.4 시골에서 김장 하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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