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가라 가을아
슬픔은 남겨두지 말고
- 떠나가라 가을아
시. 갈대의 철학[蒹葭]
떠나가라 가을아
다가올 가을이 네 차지라면
지나간 가을은 내 추억이 되어간다
네 단풍은 물들기 전부터 시작될지 모르지만
나의 가을은 마지막 잎새까지 물들어야 끝이 난다
네 가슴 아파하고
보고 싶은 사람 그립다 하는
떠난 사람 생각나게 하는 가을
이 가을을 더욱 채찍질하련다
남겨진 사랑에 그리운 사랑 보고플까
떠나간 사랑에 남겨진 사랑이 그립더냐
네가 빨리 오라는
이 가을을 두고 서두르는 채찍질에
나의 등가죽은 벗겨지고
핏물이 빗물 되어 흘러가며
진정 이 가을을 물들어가게 하는 것이
네가 소원한 이 가을을 재촉하는 이유더냐
아무리 네 채찍질에 놀란 마음이
알록달록한 햇살에 그을린 마음이 아닐진대
네 채찍질에 내 마음이 피멍 되면
그제야 이 가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더냐
내 가을은 모질고
억새보다 더 억세다는 것을 모르더냐
나의 가을이 늦가을에
네 채찍질에 오래 버티어
더 이상 내 몸의 수분이 말라 비틀어 버려
네 손에 살짝 다가섬에
닿기만 한 낙엽 하나 바스락 부서져 버린 것이
바람에 사라져 버리는 것 또한
네 가을의 시작이면
내 등짝에 묻어난
네 채찍질로 물든 이 가을을
만추의 시작이라 부르지 않으련다
단풍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
네 사랑이 무너질 때
나의 가을은 지금부터 타들어간다
그러나 이 가을에 네 소식 접하고
더욱 네 채찍질로 피로 물들인
네 등가죽은
점점 깊어가는 이 가을 들녘에
한낮의 태양 아래도 견디다 못해
한 겨울 채비에 나서는 모양새가
가히 두터운 내 등가죽은
아침저녁 기온차에
너는 여름날 한낮의 땡볕 아래에서도
모질게 달궈진 채찍질에도 끄떡없는
한 점의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네가 살라고 스스로 네 모든 것을
불태우고 벗어버림으로
너 자신을 위로하고
겸허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처연한 모습은
역시 군자다운 위용과 인품을 지녔다
다가올 겨울에 다시 찾은
하얀 설원 위에 서 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네 모습의 자태를 스스로 위로하고
자책하지는 말아다오
내 가을은 지금부터 변화한다
2018.10.9 둔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