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
자기들이 만든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기준은 법도 아니고,
모두가 동의한 것도 아닌데
일부 사람들이 스스로의 진실만을 근거로
이것이 옳고, 저것은 틀리다고
조용히 정해버린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 되어버린다.
물론,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칙과 법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진짜 아픈 건
문서가 아니라,
시선 속에 있고,
말 없는 판단 속에 있어.
그리고 그걸 우리는
‘도덕’이라 부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해진 듯 작동하는 사회의 기준.
그 기준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다르게 느끼는 사람,
정해진 방식과는 다른 사랑을 하는 사람,
세상의 흐름이 아닌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를 해친 것도 아닌데
그저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용히 배제된다.
문득 『아몬드』의 윤재가 떠올랐다.
그는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어.
그저, 세상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반응하지 않았을 뿐.
그래서 그는 자신을 감추는 법을 배워야 했고,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바꿔야만 했어.
하지만 그는 아무 문제도 없었어.
그저 다른 방식으로 느낄 뿐이었고 —
세상은 그런 감정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 뿐이야.
가끔은 정말 궁금해진다.
누가 처음으로 그걸 ‘정상’이라 불렀을까?
왜 그렇게 살아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더 슬픈 건,
그 어떤 명확한 규칙도 없는데도
세상은 끊임없이 요구한다.
비난하고,
판단하고,
상처를 준다.
그리고 가장 아픈 건,
그 거절 자체보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고쳐야 한다’는 그 믿음이야.
마치 살아가는 방식,
느끼는 방식,
사랑하는 방식에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진실은 달라.
사람의 존재에는
수많은 형태가 있고
모두가 나름대로 아름다워.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
진심으로 자신을 살아가는 건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야.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을
‘틀렸다’, ‘이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니야.
그 ‘정상’이라는 이름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게 아니야.
그건 그저,
당신이 당신으로 존재하는 것.
진심으로.
용기를 내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