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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07 자아 아홉 살, 요즘 10대를 가르친다는 것

by 는개

S# 07 자아 아홉 살, 요즘 10대를 가르친다는 것



_____문학 교과서 책상에 펼쳐져있고

_____고려가요 [청산별곡] 읽고 있는 초록

_____훈민정음으로 쓰여 읽기 힘들어한다.


초록_____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________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________(더 더듬거리는)

________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 새여?

________널라..와 시름.. 한..? 나도... 우니노라..?

______(못 읽는 부분을 읽어준다. 매끄러운)

_______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_______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__________매끄럽게 읽는 나를 보고 오~ 웃는 초록

_________)현대어 해석을 들으며 이해하려 하는

__________그러다가 의문이 더 많아진 얼굴로 묻는다.


초록_____(이해 안 되는) 쌤 청산 어디예요?

________왜 자꾸 청산에 가서 살겠다고 말해요?

________설마 수양산 같은 거예요? 중국에?


__________아무렇게나 한쪽에 접혀있는

__________모의고사 시험지 빠르게 펼치는 초록.

__________초록의 손가락 끝에 한 줄 있다.

__________{성삼문/ 수양산 바라보며~] 있는.


_______아니요.

_________여기 청산은 특정한 산은 아니고...

_________그냥 푸른 산을 얘기해요.

초록_____엥? 그럼 여기 뭔데 가고 싶어 해요?

______먹고살기 힘들어서요.


_____더 이해가 안 되는 초록.

_____인상 쓰는.

_____일단 넘기고 계속 읽어간다.


초록_____[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________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

________쌤쌤, 바라는 바다 맞죠?

________여기선 왜 또 바라로 간다고 해요?

________바라도 그냥 바다예요?

________그냥 바다 아무 데나 돼요? 해수욕장?

______여기도 바다는 맞는데 해수욕장 같은데 아니고

________그냥 바닷가 마을? 같은 데예요.

초록_____(중얼) 산이고 바다고 왜...?

______(보며) 왜 가고 싶어 할까요?

초록_____(해맑) 잘 모르겠어요!

______(웃음) 그럼 좀 더 상상해 볼까요?


_____또 이어 읽는 초록,

_____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


초록____[가다니 배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________조롱곳 누로기 매와 잡사와니...

________ 내 엇디 하리잇고]

________쌤쌤, 독한 술을 빚는 거는 빚는 거고

________이 화자는 그냥 지나가는 건데 누룩?

_______ 갑자기 왜 뭔데 튀어나와요?

________거기다가 누가 불렀다고??

________부르는 사람이 없는데 왜 안 가겠..?

________이게 대체 뭔 말이에요??

______먹고살기 힘드니까 산으로 바다로

________도망치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________결국 이런 힘들어 죽겠는 나를

________ 술이 부르니 어찌 안 마시겠느냐,

________뭐 그런 말이죠.

초록_____?

______이거 들어본 레퍼토리 같지 않아요?

초록_____?


________더 알 수 없는 얼굴이 된 초록

________그런 초록 보며 배우처럼 연기하는 나


______(장년층 남자 말투로 연기하는)

________저 부장새끼, 아오. 조만간 사직서

______내고 만다. 진짜 다 때려치우고

________어디 산에 들어가서 살고 싶네...

________딸린 식구만 아니어도..

________(다른 목소리, 다른 말투로) 차장님!

________또 결재 반려됐죠?!

________아, 진짜 부장님... 왜 그러신대요...

________이따 퇴근하고 소주 한 잔 하실까요?

________제가 살게요!!!!

________(또 말투 바꿔) 내 맘 알아주는 건 진짜

________김 대리밖에 없다.....


__________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의 초록

__________뭔가 크게 확, 깨달은 표정.

__________혹시 해석했나, 하고 기대하며 보는 나


초록_____(!!) 저 이 드라마 알아요!

______드라마는 무슨, 초록이 아빠 얘기야.

초록_____에?

_______아빠 회사 다니신다며.

초록_____(해맑) 네!

_______아빠는 용돈 얼마야?

초록_____모르죠?


_____천진난만한 초록의 얼굴

_____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얼굴이다


_______아빠가 본인을 위해 쓰는 돈은 거의 없을 거야

________솔직히 아빠 혼자는 편의점 알바만 해도 살 수 있어.

________근데 왜 그렇게 안 사실까?

초록_____몰라요!!


_____천진난만한 초록의 얼굴.


______술이 나를 부르니 이 일을 어찌할꼬....

_______아... 오늘은 끝나고 치맥을 해야겠어

________(뒷목 잡으며) 맥주 땡긴다.....

초록_____(완전 신난) 와, 쌤!

________저 사주시면 안 돼요?!

________옆에서 얌전히 치킨만 먹을게요 >_<












어이구 두야.

이렇게 맥락을 못 읽어서야.


요즘 10대들은 대학만을 목표로 하고,

모든 것을 대학 간 이후로 미루고

오로지 입시에만 매달리다 보니

공부를 제외하곤 여러 부분에서

크질 못한 경우가 꽤 많다.


마음속에 어린이가 사는 고딩이들에게

매일 놀라고, 당황하고, 웃는다.


아이들은 고전을 읽고 있지만,

나는 아이들을 읽는다.


문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은 삶을 설명하고 있는지도.


요즘 10대를 가르친다는 건,

세상을 사는 하나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문학을 가르치면서, 질문을 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맥락 읽는 법, 감정을 말로 하는 법, 질문 찾는 법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답이 있는 것과 답이 없는 것을 구별하는 법.

성인과 미성년자를 나누는 기준,

어떤 것이 옳은 건지 모르겠을 때 판단하는 방법.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갖춰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유한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특별한 어떤 것, 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쓰기 위해서 갖춰야 할 첫 번째는

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야기할 마음이 첫 번째가 아니라,

글자를 쓰기 위해,

펜부터 잡을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펜과 종이, 하고 싶은 이야기, 연습지와 연습방법.

하다 못해 펜을 쥐는 방법과 이야기를 쓰기 위해 종이를 펼치는 방법까지.


사람의 인생을 한 권에 책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펜을 쥐는 방법도 모르고

쓸 수 있게 빈 종이를 나열하는 방법도 모른다면,

이야기는 영원히 쓸 수 없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세상을 보는 관점 하나와,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개 강사 한 명이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르친 펜 쥐는 방법이 잘못됐다면 나중에 네가 알아서 고쳐. 솔직히 그 후 까지는 생각도 못하겠고 일단 쥐는 것부터 하자.


아이들을 가르친 기간이 늘어갈수록 유리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아이들을 너무 많이 만난다.

부모가 너무 사랑하고 귀해서 아껴준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들을 준비해주다 보니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다.

아이들은 걷기만 하면 꽃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꽃길인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람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지만,

그 책들이 처음부터 양장본에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연습지가 필요하고

얼마나 많이 써 봐야 하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는 아이들의 질문을 떠올린다.

“청산이 어디예요?”

“왜 산에 가고 싶어 해요?”

나는 그 질문들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다시 읽는다.


나에게

요즘 10대를 가르친다는 건,


그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문장을 믿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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