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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08 요즘 고딩이들의 명절 보내는 방법

학업에 종사 중인 학생들아, 너희 자신도 쉬어야 일을 하지 않겠니?

by 는개

S# 08 요즘 고딩이들의 명절 보내는 방법



_____공부하고 끝날 시간,

_____달력 보며 연휴 일정, 스케줄 얘기하는 나

_____[예비 고1 문학] 책 덮으며 정리하는 연두


_______명절에 일정은 어떻게 돼?

연두_____할머니집 낮에 밥 먹으러 가요.

______어딘데? 언제 가?

연두_____사당동이요. 추석 연휴 첫날이요.

______거기 며칠 있어?

연두_____며칠이요? (갸웃) 하루요. 저녁에 와요

______그리고?

연두_____(의아)그리고? 집 와서 자고 김포 가죠.

________ 외갓집. 그럼 끝. 글고 집 와서 공부하죠.

______그럼 끝? 그리고... 공부? 왜?

연두_____(왜 묻지?) 네. 시험 기간이잖아요.

________근데 왜 그러세요?

______명절에 공부...? 중3 이...? 왜...?

연두_____예?

______그리고? 명절 연휴에...? 뭘 위해서...?











요즘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한 시간 거리 근교 거나, 옆동 아파트, 멀어봐야 서울 이 끝에서 저 끝이다. 아니면 경기도 요기에서 죠오기 이던가.


기억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명절에 나는 전쟁 속에 있었다. 귀성전쟁, 귀경전쟁.

그 전쟁 속에서 나라가 발전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고속버스 좌석이 일반 좌석에서 우등좌석으로 바뀌고, 기차표 끊기가 어려워 아빠가 역에 가서 표를 끊어다 우편으로 부쳐 주기도 했던 시대를 지나 휴대폰으로 예약하고 취소하게 되더니, 이제는 ktx라는 엄청난 속도의 기차까지. 결혼 전까지 내가 부모님 집에 가는 방법은 자정에 내려가고, 올라올 땐 취소표를 기다렸다가 낚아채는 방법이었다. 당일에 모인 사촌들 모두가 각자 붙잡고 누구라도 성공하면 그 표 삯을 계좌이체했다.


세상이 정말 편해졌으나 거리를 가까운 건 이길 수 없고 터미널이나 용산역엘 가지 않고 일반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다는 게 정말 부러워서 좋겠다... 를 연발하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또 다르다.

이전세대에 비해서도 많이 간결해진 차례상 차림을 거들거나, 선산이 아닌 납골당으로 성묘를 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 두 끼 먹고 집에 온다던지 그렇단다. 명절마다 으레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그런 명절 모습과는 또 다른 풍경이다. 왜 그렇게 빨리 오느냐고 했더니 공부해야 한단다.


공부라니.


내가 청소년 시절엔 명절에 개인적 시간이란 없었다. 귀성전쟁, 아빠네 본가, 엄마네 본가 (그때는 외할머니 댁, 친할머니댁이라고 불었다) 그리고 귀경전쟁을 거쳐 집에 와선 바로 학교 가는 일상복귀였다.


아빠의 본가는 남쪽의 섬이라 가는 길도 오는 길도 멀디 멀었다. 갈 때 한 권, 올 때 한 권. 기본 두 권 이상은 챙겼다. 아니면, 평소에 너무 길어 선뜻 읽기엔 엄두가 안 나던 두꺼운 책들을 들고 차에 탔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 1부?를 읽었었던가. 주인공 서희가 작중 배경인 하동 평사리를 떠나는 장면까지를 보고, 드디어 봤다마 신났었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 필수 도서들 중 안 읽히는 책들을 읽는데 꽤나 유용했다.)


각설하고, 개인적인 시간은 그뿐이었다. 남자 상, 여자 상을 따로 차려야 했던 시골 동네라 가서는 상 차리고 심부름하고 설거지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명절을 보내고 모두들 일터로 갔다. 가만히 보니 학교나 직장이나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대학교로, 직장으로. 복귀장소가 달랐을 뿐, 패턴은 똑같았다.


그러면서 학생에게는 공부가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학업'. 그래, 일. 학생에게는 배우는 것이 일이었다.












모든 사람은 '업'을 가지고 '생활'을 한다.

일은 생활이다. 종족의 생존에 필요한 의, 식, 주를 얻기 위한.


나라가 고성장을 거치며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자 이제야 사람의 삶에 변화가 왔다.

자영업자가 연중무휴에서 한 달에 한 번, 격주에 한 번 쉬다가 주에 한 번 쉬는 날이 있는 시간들을 거쳐왔다.

기업들은 5일을 일하고 2일을 쉬는 것이 너무 당연해졌고 학생들도 토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는 일상이 당연해졌다. 휴일에 쉬어야 일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위해서 쉬는 날에도 일해야 하는지 물었다.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지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도 대학은? 직장은? 하고 똑같이 들었는데. 그다음도 있어.

그다음은 결혼은? 다음에 애기는?이라고 물어. 흐흐.

그건 그냥 일상이야. 공부도 그렇고.

아니 쌤, 그래도 시험기간은 공부를 해야...

야, 학생도 사람인데 쉴 땐 쉬어야지. 연휴에 공부? 왜?

시험기간이니까요....

음... 그건 온전한 네 생각이야?

엄....


아이는 결국 대답을 못했다.

뭘 위해서 이렇게 공부해야 할까.

이렇게 애기인데.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고, 해야 하면 하기 싫어도 좀 하고 그래야 하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연휴 내내 일이라니.


국어는 생각하고 사유해야 문해도, 독해도 해. 국어는 그니까 하지 마 공부. 숙제 없어.

아니, 하지 않는 게 숙제야


그래서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 걸 숙제로 내줬다.


명절 내내 연두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다.

시험기간이니까 연휴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할 때의 그 표정.

연두가 시험공부를 했을까, 안했을까가 궁금했다. 연휴 내내.


나는 구시대적 관습과 남아선호사상으로 고통받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며느리들이 명절 끝나면 부부끼리 다투는 기사를 보며 공감하고 있는 내가 너무 불행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시대는 분명 더 편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편해진 아이들이 정말 나보다 힘들지 않은 게 맞는 걸까.


명절을 쇠러 가면 시집가면 그만일, 기집년 주제에 어디서 말대꾸고, 뭐 한다고 재앙만 부리고. 넌 참 쓸모가 없다, 는 소리를 매번들었다. 술 상을 늦게 내면 뭐 하느라 꾸물대서 분위기 잡치냐는 구박도 적지 않았다. 잘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결국 나는 어느 땐가부터 할머니를 '아빠의 엄마'라고 칭하며 보기를 거부했고, 요양원에 입원하시고도,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한 번도 뵙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가졌진 이 설움의 무게와 고통의 크기가 정말,

이 아이들보다 덜 불행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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