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최선은 주변에 숨기기
다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가라앉는 일이었는지 며칠째 기분이 계속 처져 있었어요. 새로운 전문의 선생님을 찾았고, 일단 이전에 챙겨두었던 약의 처방전과 이전의 대략적 상태, 현재의 상황들을 얘기하고 비슷한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하던 노력들을 다시 하기 시작했어요.
저의 우울은 자존감이 낮은 게 큰 원인 중 하나여서, 그에 관한 사례를 많이 접할 것을 권유받았었습니다. 특히 한참 에세이가 많이 나올 때 여서 전자책으로 대여할 수 있는 책들을 거즘 보고, 어떤 에세이는 여러 번 읽기도 했던 것 같아요.
지난 치료과정 중에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행복'의 보편적 모습이었어요. 많은 책들에게 행복은 기쁜'찰나'들이 많이 모여있는 형태라고 들었습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저것이 정답은 아니고, 당연히 '나'의 행복의 모습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얘기한 거니까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게다가 누구나 가장 행복한 때라고 얘기하는 '신혼 초'니까 현재가 가장 행복한 나날이겠다고도 생각했고요.
제가 먹는 약은 먹으면 감정기복을 줄여주고 어떤 때도 플랫하게 만들어 주는 성분이 많아요.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대신 기쁘지도 않고, 불안에 미치지 않게 해주는 대신 즐거움도 적게 느끼는 상태입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의 기준이 공식적으로 선정되고, 기존의 관계와 거리가 모두 조절되는 상황들을 체험하고 적응하며 지금의 저는 순간순간 자주 웃고 떠들고 있습니다.
근데 왜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어요.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울컥했다가 방심하면 눈물이 두어 방울 쏟아져요.
타인에게 감추는 건 그래도 요령이 들었는데 곁에 가까이 있는 이에게 숨기는 건 너무 어렵더라고요. 반려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눈물이 흐른 볼을 얼른 닦아냅니다. 예민하고 꼼꼼한 사람이라 당연히 눈치를 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숨겨요.
3년에 가까운 치료과정을 모두 보았고, 그 이전에 여러 주변상황에 따른 외부자극에 불안해하는 상태와 우울해하는 상태를 모두 보았던 사람입니다. 마음 아파해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에게도 최악의 상태일 때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었어요.
폭음하며 열네 시간쯤을 울었던 모습도
시시때때로 오열하며 옷자락을 쥐 뜯었던 모습도
자해로 몇 번이나 손목이며 허벅지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던 모습도
견디다 못해 수면제를 먹고 자고 일어나 또 먹고 자고 했던 모습도
다 숨겼었는데.
나아가고 있었다고 믿었었던 때에 나보다 더 안심하던 이였으니, 이전에도 보여주지 않았던 더 바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참고 참고 또 참아요.
도망쳐 울 곳이 없어 침대에 등을 돌리고 자는척합니다. 또는 이미 몇 번이나 본, 악역이나 독한 스토리 없이 아기자기하게 진행되는 10 대물이나 동화 같은 힐링물을 계속 보고 있어요. 아이패드의 배터리가 다 나갈 만큼. 아마 일이 힘들어서 피곤해서 오래 자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게요. 그런 척하며 나는 보고 또 봅니다. 보고 있는 아이패드 속에서 인물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와요. 너는 사랑스러워ㅡ 네가 좋아- 같은 직설적인 말들이. 내게 하는 말이라고 되뇌며 계속 눈으로 좇고 또 쫓습니다.
나아지는지 어쩐 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이 덜 아프고 눈물이 덜 나긴 합니다. 그저 체득한 방법이에요. 보통 외부적 자극에 의한 불안과 우울은 3~4일이면 잦아들었었어요. 그 정도만 신경 쓰고 약을 먹으면 괜찮아졌습니다. 그렇게 일단 지내는데 일주일이 훨씬 넘었는데 왜. 무엇 때문에 가슴이 이렇게 미어질까요. 나도 몰라요. 그냥 그저 버틸 수밖에. 1초, 10초, 1분, 1시간... 그냥 그 순간만 넘기겠다 생각하고 참아요. 그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재밌거나 기쁜 순간순간.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떨어지는 눈물과 넘쳐나는 슬픔
순간의 기쁨을 자꾸 되뇌려 노력하며 누르고 누르는 게
현재에서는 최선인 것 같아요.
지금은 숨기는 것만도 숨이 차는 걸요.
그래도 혼자서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감춰낼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다행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