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만나지 않는 지금, 우울이만이 곁에 있는 현재
사실, 사람이 무서워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된 지 몇 년 됐어요.
아주 소수의 사람과만 어쩔 수 없이 교류하고
그 외에는 어떻게든 스쳐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곁에 두고 있는 건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에요.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제 안에 분명히 있는 우울이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만 하는 한 소설 속의 주인공.
세상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어쨌든 그 캐릭터도 사람이라 무섭다가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소설 속 세계의 캐릭터니까
안심하면서.
그러다가 그를 향해 어느 순간 낙서처럼 혼잣말 하는 나를 발견해요. 지금의 제 상태에 대해 뭐라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며 기대하죠.
그럴 때마다 책을 들어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러다 잠이 들어요. 외롭고 고독하게 혼자 서 있는 모습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보면서 지금의 나와 비슷한 결이지 않을까 하고 책을 끌어안고 문장 하나하나를 하염없이 덧 그립니다.
지금은 그런 날들을 보내고 버티고 있습니다.
정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바닥으로 바닥으로 끝없이 잠길 것만 같아서 아무것도 안 하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뭐라도 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전부 놓아버릴 까봐요.
다행히 약 기운에 감정은 범람하지 않고, 저 높은 곳으로 뛰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그나마 버텨집니다.
늘 그것들을 이기고 송곳처럼 튀어나왔던 우울이를 막지 않고 나뒀더니
오히려 다른 감정들이 우울이에게 눌려서 더 우울이 말고 다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아요.
차라리 나은 걸까요?
이 삶,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왜 지속해야 하지?
놓으면 안 될까
하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말하는 소리 사이를 계속 부유하면서.
한동안은 계속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의 우울이를 같이 있다고 느끼고
날 이해할 것만 같은 그 사람이 살아 숨 쉬는 책을 끌어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