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우울이를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감정은 자각되면 마음에 큰 해일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떨 땐 오히려 편안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떤 땐 아는 게 독이고,
어떤 땐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병이라고 생각하고 치료할 땐 나타나는 게 그렇게 무섭고 두렵고 어찌할 줄 모르겠더니 어떤 감정인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알고 나니까 공포감과 불안감이 덜 해요.
원인 모를 감정보단 이름을 아는 감정이,
감정의 색깔이나 모양을 분명하게 알고 싶어 하는 답답함을 못 견디고 안절부절 못 하는 것보다는요.
훨씬
훨씬
훨씬
쓸데없는 고민을 해소하는 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바로 지금, 내가 우울에 휩싸여서 흔들리고 휘둘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억지로 누르거나 들킬까 무서워서 온몸을 웅크리고 있어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마자 놀라우리만치 차분해진 것처럼.
이젠 우울이랑 같이 제 슬픔의 감정을 해석해 보려고요.
우울에 잠겨 죽지 않으려고만 했어요.
살기 싫은 마음으로 살면서
죽고 싶은 마음에 간절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거든요.
슬픔을 참는 방법만을 찾았지 이 슬픔이 왜 왔는지
알아보려고도 분석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었어요.
우울이랑 같이 있는 동안에는 내 마음에 우울이 말고는 전부 사라지고 우울이에게 모든 신경이 집중되니까.
늪에 빨려 들어가듯 내가 잠식당한다고 생각했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울이를 견뎌내느라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나 싶기도 해요.
커터칼로 팔목을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그으며
흘러내리는 피와 점처럼 떨어지는 살점 다가온 아픔에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느끼던 때처럼.
그래서 우울이와 같이 있어보기로 했습니다.
쫓아내려, 몰아내려, 벗어나려 애쓰지 말고
그냥 있어보려고요.
같이 있으면 뭐라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오늘 처음으로 우울이가 왔을 때 내버려 뒀어요.
마음 어디까지 내려갈지 조금 예상이 되니까 버텨.ㅣ더라고요. 여차하면 약 먹고 술 마시고 수면제 먹고 자면 되지, 하고 가볍게 생각하니까 지금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만, 오늘만 하며 산지 몇 년 째고,
지금만 넘기면 될 테니까.
우울이에게서 벗어나려고 너무 초조해지지 않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