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과 장미. 공존하고 있습니다.
결혼 관계에 뉴로다이버시티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된 후, 많은 정형인 배우자들은 이혼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배우자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결혼 전부터 알았던 경우에는 그렇지 않겠지만, 전혀 모르고 결혼을 했던 경우 정형인 배우자가 한 결혼 서약의 내용은 뉴로다이버시티가 존재하는 결혼은 아니었으니까요. 분명 신경다양성이 존재하는 결혼에는 정형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을 이루기에는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혼만이 답일까요?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되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의 다름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뾰족하게 날이 선 마음 속 분노들과 억울한 마음, 상처들이 조금씩 무디어 지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결혼'이라는 그림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한 자세로 다시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특히 요즈음에는 꼭 뉴로다이버시티가 있는 결혼 관계가 아닌 정형인들간의 결혼 생활에도 하나만의 정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습니다. '결혼 했으니까 부부는 하나이다', '결혼 했으니까 꼭 한 방을 써야 한다', '결혼 했으니까 희생해야 한다', '결혼 했으니까 각자의 부모님에게는 ~ 의무를 해야 한다' 등등... '결혼은 이래야 한다'는 전통적이고 일률적인 통념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꼭 그렇게 하지 않는 다양한 모습의 결혼 생활도 충분히 받아 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보수적인 한국적 사고방식이 저도 모르는 새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었던지라 새로운 형태의 결혼 생활 내 부부 관계를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호주에 살면서 가족의 형태, 결혼 생활의 형태 등등에서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형식들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더 많이 체감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한 가지 형태만이 정답이라는 오류에서 벗어날 용기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아가 '낭만적 사랑'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헛된 맹신 또한 깨부수어야 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운명적인 상대와의 만남. 그리고 그 황홀한 사랑은 결혼으로 완성되어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 너무 이상적이어서 그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낭만적 사랑'의 신화. 그것에 저는 어느 정도 중독되고 빠져서 그런 사랑만이 이상적이고 진짜 사랑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사랑에 대한 저의 이상이 이러한데 일상적인 핑퐁대화가 어렵고, 내가 울고 있어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가 내 남편이라니... 그 괴리가 너무 커서 절망적인 수준이었지요. 나중에 저를 찬찬히 돌아보며 알게 된 것이지만 저도 인지하지 못했던 제 내면의 상처들이 낭만적 사랑을 통한 무조건적 사랑을 받음으로써 치유되고 구원받기를 갈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처들 때문에 내 마음을 잘 몰라주는 남편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더 컸다는 것도 말이지요.
저도 어떤 순간에는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고 친정 부모님도 요즘은 이혼이 흠이 아니라며 남은 인생을 위해 충분히 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이혼은 답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꿈꾸던 낭만적 사랑과 결혼 생활의 이상적 그림이 완성될 수 없다는 점에 크게 낙담한 것 때문에 굉장히 힘이 들고 우울했지만, 그게 이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해결될 종류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너무 힘들고 어려울지언정, 사랑하는 딸과 나와 다르고 소통 방식도 잘 모르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남편과 함께 우리만의 방식으로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방법이 있다면, 그래서 그게 가능하다면 꼭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뉴로다이버스 커플이 저와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정형인들이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듯, 아스피들도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기에 치명적인 사유가 있다면 이혼을 하는 것도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폭력 혹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제적 어려움이 있거나 중독 문제가 있는 등의 사유가 있다면 이혼이 더 합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뉴로다이버시티 문제를 모르고 너무 긴 시간 관계가 지속된 경우, 더 이상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와 트라우마가 계속 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나 파괴적이기 때문에 수십년 간의 결혼 생활 후 이혼을 한 뉴로다이버스 커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우선 지금 관계에서 최선을 다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 것이 저도 남편에게도 더 편안하기에 저희는 각자의 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한 대화를 해야할 때에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대화 방식을 고수하고, 제가 감정적인 지원이나 이해를 받고 싶을 때에는 남편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한 뒤 적당한 일정을 짜서 그 시간에 대화를 나눕니다. 제 눈빛이나 표정만 보아도 남편이 제 마음을 알아채고 어떤 행동을 해 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는 내려 놓습니다. 가끔 의도치 않게 저를 화나게 할 때에는 바로 맞서 싸움을 만들기 보다는 나중에 차분히 제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합니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남편의 역할' '부부 사이의 친밀도' '아빠의 역할'과 같은 개념에 대해 모르고 있을 때에는 '그것도 모르느냐'면서 화내기 보다는 '전체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보면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일상의 많은 것들이 '당연한' 것들 보다는 '다름'과 '설명', '조율'로 채워져 갑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계속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당연한' 것들 '편안한' 것들이 많아지고, 남편이 저를 이해하는 경우가 늘어 갑니다. 현실적인 기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서로 다른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같이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들만 같이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함께 하는 시간을 두 사람 모두 편안히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의 뉴로다이버스 결혼 생활이 너무나 이상적이고 매일이 행복한 나날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여전히 매우 다른 뇌구조를 가진 두 사람들이고,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일 새로운 도전을 맞닥뜨립니다. 정형인으로서 이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채워지지 않는 감정적 교류와 충만함 등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처럼 아스피 배우자와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며 그녀의 결혼 생활 여정에 대한 책을 발간한 Katrin Bentley 의 시를 공유하려 합니다.
Katrin Bentley의 저서 'Alone Together: Making an Asperger Marriage Work'에서 저자는 아스퍼거 증후군 연구의 대가인 Tony Attwood의 아스퍼거 결혼에 대한 강연을 듣고 쓴 '선인장과 장미'라는 시를 책의 서두에 담았습니다.
오래 전 나는 장미였고, 당신은 아름답고 강하며 믿음직스러운 선인장이었지요.
나는 당신의 강함과 자신감, 멋진 외모를 사랑했지만 당신과 함께 사막에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나를 당신에게 맞추고 싶어했고, 내 푸른 잎들을 잘라내기 시작했죠.
사막의 땅은 메말랐고, 기후는 너무 가혹해서 나는 살기 위해 간절이 물이 필요했어요.
천천히 나는 시들고 내 꽃은 져버렸죠.나는 비옥한 정원의 흙과 양분, 다른 모든 형형 색색의 식물들이 그리웠지만, 어쩐지 이제 더 이상 그런 정원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남은 잎들은 질겨졌고 내 모습은 거의 선인장에 가까웠죠!
나는 가혹한 태양과 모래바람을 덤덤히 여기는 방법을 배웠고, 더 이상 목말라하지 않게 되었어요.
실제로 나는 이제 별로 많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요... 한 편으로는 그게 더 쉽지만 때로는 아침 소나기가 내린 뒤 상쾌한 빗방울이 내 잎사귀를 적시던 느낌이나 나비가 내 곁을 날아가며 부드럽게 나를 간질이던 느낌을 즐겼던 것을 기억해요.
제가 이 결혼에서 더 이상 장미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선인장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때 저는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전, 남편에게 남편과 결혼한 뒤 형형색색으로 느껴지던 세상이 흑백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선인장과 장미'라는 시를 읽고 난 뒤 큰 공감이 되었던 것은 아마 같인 이유였겠지요. 하지만 저는 오늘도 남편은 행복한 선인장으로, 저는 행복한 장미로 함께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적어도 제가 좋아하는 토양과 남편이 좋아하는 토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게도 남편에게도 각자의 토양을 제공하는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저희 집에 공존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