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 가장 특별하다
보통의 삶이란 어떤 걸까? 1. 중산층에 속하고, 2. 평범한 정도의 질환을 가지고, 3. 때 되면 결혼하고, 4. 때 되면 아이 낳고, 5. 때 되면 집 사고, 6. 때 되면 아이 결혼시키고, 7. 때 되면 손주 보고, 8. 때 되면 죽는 것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일까? 이 정도 조건이면 보통의 삶을 살았다고, 그대도 인정하겠는가? 그 보통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특별한 것인지 절감하는 요즘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중산층에 속한다.
표준 국어 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중산층이란 재산의 소유 정도가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의 중간에 놓인 계급으로, 중소 상공업자, 소지주, 봉급생활자 따위가 이에 속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2022년 4월 7일 매일 경제 신문의 기사 내용에 따르면, 평균 연봉 8232만 원 (월평균 소득 686만 원), 부동산과 금융 자산 규모가 9억 4461만 원 정도라고 한다. 부자의 잣대 역시 높아져 부동산과 금융 자산 규모가 38억 8400만 원이다.
연봉이 9천 인 사람이 연봉 전체를 깡그리 다 모아도 9억 되려면 10년 세월이 걸리는데, 소비까지 생각하면 30년은 넘게 걸린다. 연봉이 9천이기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중산층이 되는 게 그렇게 어렵다고? 근로소득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중산층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보면, <아기 공룡 둘리>에 나오는 고길동은 둘리에게 트집만 잡는 못된 캐릭터가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쌍문동 사는 중소기업 만년 과장 고길동은 아내, 아들, 딸, 그리고 둘리, 희동이, 양동이 등 대가족을 데리고 산다. 마당 딸린 2층 집을 가지고 있고, 취미는 LP판 모으기이며, 중형차를 소유하고 있다. 보통의 중년을 그리려고 했다지만 (심지어 중년도 아니라 30대로 설정되어 있다.) 상당한 재력가였음에 틀림없다.
2. 평범한 정도의 질환을 가지고.
평범한 정도의 질환이란 어떤 것일까. 2022년 4월 5일 기준으로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은 27.8%(남 32.7%, 여 22.9%)로, 이는 일반 인구 중 1/4 이상이 평생 중 한 번 이상 알코올 사용장애, 니코틴 사용장애, 불안장애, 혹은 우울장애를 경험한다고 한다. 대상포진의 경우에도 평생 유병률 기준 3명 중 1명꼴이라 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평생 암 발병률은 약 35.5%로 남성 40%, 여성 30%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 3명 중 1명은 기대수명인 약 85세까지 살 경우 3분의 1이 평생 동안 한 번은 암에 걸린다. 이 정도의 빈도라는데, 평범한 질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평생 유병률로 접근한 것이 잘못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요는, 그저 감기 정도만 경험하면서 건강한 노후를 맞이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야기다.
3,4. 때 되면 결혼하고 때 되면 아이 낳고.
결혼 적령기가 점차 늦어지면서 22년 기준 대략 33세 정도로 본다면, 이미 그 나이에는 순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은 아닐 수 있다. 결혼도 점차 늦어지는 추세이고 아이도 계획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계획을 했다고 해도 난임이나 불임도 많아지는 추세인지라, 아이의 계획을 묻는다거나 하는 일이 보통의 것, 쉬이 물을 질문의 종류는 아니게 되었다. 20대에는 난임 환자 비율이 4%에 불과하지만 35세까지는 10~20%, 그 이후에는 30~50%까지 증가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로써 6,7번 항목도 자연히 사라질 수 있는 항목이 되어버렸다.
5. 때 되면 집 사고.
2022년 6월 8일 기사 기준으로 KB부동산의 주택 가격동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월 강북(14개 자치구) 중형 아파트(전용면적 85㎡초과~102㎡이하)의 평균 매매 가격은 11억 9893만 원, 강남(11개 자치구)은 18억 9970만 원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자산 증식이 가장 많은 40대를 기준으로 영혼까지 끌어 모으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려면 10억은 있어야 한다는 소린데, 이것 또한 결코 평범하게 이뤄낼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8. 때 되면 죽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이란, 노화로 인한 자연사일 텐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자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하직하는 경우도 있고,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하여 저 세상으로 먼저 가게 되기도 한다. 죽음에 관해서는 <미리 쓰는 유서>(https://brunch.co.kr/@neurogrim/110) 글을 일부 참조하자.
보통의 엄마 보통의 아빠 그리고 보통의 자녀.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 일인지. 보통의 것이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 보통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행운이 따라주어야 하는지는, 단 하나의 항목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오늘도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자. 내일도 보통의 나날, 보통의 주말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자. 보통의 삶이 가장 특별한 삶임을 자각하며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