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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un 17. 2022

나이와 직업을 뺀 나는?

어떻게 나를 정의할 수 있을까



어느 프로그램에서 나이와 직업을 알려주지 않은 채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먼저 거친다. 그리고 2일 뒤에야 나이와 직업이 공개되는데,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의외의 나이와 직업이 등장하기도 하여 재미를 선사하였던 기억이 난다.




만 39세 여의사가 내 정체성에 차지하는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단 아이 엄마들 첫 모임에서는 내 정체성에 만 39세 여의사는 없다. 누구누구 엄마일 뿐이다. 첫인상은 어떻게 결정될까. 외모와 입고 있는 옷매무새와 키, 분위기 등으로 결정될 것이다. 나의 첫인상은 대체로 새침한 인상이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면 허당에 털털하다고들 하신다. 엄청 세게 보는 사람도 있고, 유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보는 인상은 다르겠지만, 첫인상도 사람을 결정짓는 데 제법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 않을까 한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에 나오듯, 첫인상은 많은 편견을 갖게 한다. 백인, 흑인 등의 얼굴색부터가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작가님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특권 계급과도 같은 존재일 수 있는데 왜 낙인과 혐오를 넘어 이해와 공존으로라는 부제의 책을 썼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 역시 편견을 가지고 바라봤기 때문에 의아심이 들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서울대 출신의 정신과 의사, 거기다 뉴욕 예일대의 학력이 추가된 사람이라면, 의당 낙인이나 소수자와는 무관한 특권 엘리트 집단의 소속이겠거니, 하는 것 그 자체가, 한국 사회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단순한 편견이었던 것이다. 그는 뉴욕에서 소수 황색인종 이민자인 의사였을 뿐이고, 그것은 그에게 다른 소수자에게 대한 깊은 공감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낙인과 혐오를 넘어 이해와 공존의 세계를 꿈꾸게 했을 것이다. 나는 겪지 않았고, 결코 알지 못할, 그런 경험 이후에 쓰게 된 책이며, 이는, 다른 정신과 의사가 쓴 흔하디 흔한 책과의 차별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인상으로 인해 결정되는 나라는 사람의 퍼즐 한 조각은, 어쩌면 딱 맞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전혀 맞지 않는 모양 일지도 모른다. 대화를 하다 보면 말투와 쓰는 언어에서 드러나는 성격이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되어준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 말하는 뉘앙스,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비추어 짐작하는 삶의 태도 등에서 어떤 사람일지 대강 유추해볼 수 있다.


결국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주로 하고 지내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라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을 것이고 아이들 케어도 워킹맘에 비해 유리한 편이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에 종사하는 시간이 풀타임 근무로 봤을 때 최소 여덟 시간 이상이므로 하루 중 분배된 절대적인 시간이 많기에 그로 인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 관심 분야 사고방식 인간관계 등에 여러모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직업이 드러나기를 좋아하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직업을 궁금해하는 편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경우엔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알아간다. 하지만 나의 직업은 쉬이 까발려지기 마련이라, 비밀 유지에는 번외의 노력들이 필요하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직업을 뺀다면 어떤 수식어를 넣을  있으며 나는 어떻게 설명 있을까?


가끔 그림 그리고 글도 쓰고 그래요. 책이 많은 곳을 좋아해요. 아이에게 자유방임하는 편이죠. 학원은 싫어해서 안 보내요. 할 말은 하고 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러려니 넘기는 편이죠. 분란을 싫어해요,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 쏘다니며 여행 다니기 좋아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해요.


나이와 직업을 빼고 나니 나에 대한 서술이 빈약하게 느껴진다. 의사라는 후광이 나를 조금이나마 빛나게 해 준 것 같기도 하다. 작가들의 화려하고도 멋있는 프로필을 보며 생각한다. 다들 참 잘 쓴다. 나는 매번 멈칫하며 뭘 써야 하나 고심하지만 단어 하나 서술어 하나 못 고르는데.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긍정적인 여의'라고도 썼다가 결국 '신경과 전문의 여자 사람'으로 멋없이 써놓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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