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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un 04. 2022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20대와 40대의 관점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언젠가는, 이상은




젊음이 좋은 이유에 대해 의학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가 그랬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이상은의 노래가 떠오른다고. 20대의 어느 날, 나는 상수역에 사는 친구와 함께 홍대를 거닐며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함께 부르며 거리를 거닐었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 우리들의 20대는 우정과,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쉬이 동요하고 쉬이 감정적이 되었으며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노래를 떼창 하듯 불렀을 때, 내게 다가온 문장은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였다. 


40대에 접어든 지금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이 문장에 꽂힌다. 20대에 이 노래를 사랑했던 그때 그 마음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진정 젊은 날엔 젊음을 몰랐던 것이다. 젊음이 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이 심오함이란! 여전히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하지만 꽂히는 포인트가 달라졌다. 어떤 구절도 어떤 나이대에 상관없이 와닿는 명곡인 것도 사실이지만,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실감한다. 삶은 잔잔한 호수처럼 흘러가고 아이들이 가끔 돌을 던져 파동을 만들어내지만 이내 재우고 나면 다시 이렇듯 평화가 깃든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20대는 바다의 풍랑을 이겨내는 거센 파도와 같은 느낌이라면, 40대는 잔잔한 호수의 물결 같은 느낌이다. 개인의 성향의 차이도 분명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또래에 비해 기복이 크지 않았던 내 경우만 봐도, 20대에는 파도에 휩쓸리기도 했다가 폭풍 전야의 고요함도 왔다가 아주 들쭉날쭉했던 것 같다. 10대에는 우정으로, 20대에는 사랑으로, 30대에는 육아로 점철된 삶을 살았는데 40대에 들어선 지금은? 차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 보며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중이다.




디지털로 바라보는 나의 과거는, 10대 나우누리, 20대 싸이월드와 개인 홈페이지 (제로보드를 아시는지?), 30대 트위터와 페이스북 + 개인 비공개용 블로그, 40대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로 이어지는 중이다. 겹치는 시기도 있긴 한데 전반적인 흐름은 그러하다. 애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1순위는 당연 개인 홈페이지이지만, 어느 날 사라지고 말았다. 개인 도메인도 매년 샀었는데 왜 없앴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당시부터 무료 온라인 플랫폼이 잘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이사하듯이 전 단계의 모든 흔적은 없애버리곤 했다. 나름 영화 리뷰 책 리뷰 일기 등 깨알같이 많이 썼던 것 같은데 백업도 하지 않고 모두 삭제해버렸네. (왜 이런 것만 미니멀리즘?) 최근에 친구들이 20년 전 싸이월드 사진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던데 이미 나는 삭제했던 계정이라 복구해도 뭐가 없다. 그 당시의 사진들을 다 백업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고. 심지어 네이버 블로그도 한번 아이디를 도용당해서 백업 없이 모든 데이터를 삭제해버리는 바람에 그 당시 쓴 글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이런 과거의 나를 돌아보자니, 브런치도 100개 넘개 썼지만 언제 또 미련 없이 폭파시킬지 모르겠다. (찾아보면 그런 작가들도 있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젊은 날에는 젊음을 모르고 노래에서 시작된 생각의 꼬리 물기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책을 내고 싶은데, 흔적 지우기에 능한 내가, 과연 책을 낼 수 있을까? 세상에 내 힘으로는 쉬이 없애기 힘든 창작물을 내놓고도 내가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한낱 리뷰글조차, 쓸 때는 심사숙고하고 썼으면서 나중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흔적을 싹 없애버린 나인데 익명을 빌리지 않고도 나를 드러내어 책을 낼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백개의 글을 연습하며 달려온 지금에도 나는 잘 모르겠다.


20대의 내가 40대의 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와, 너 여전히 여기저기 끼적대고 살고 있구나? 뭐가 두려워, 그냥 질러! 너도 잘 알다시피 사람들은 생각보다 네게 관심이 없어. 관심받고 싶지만 생각보다 관심들이 없는 게 대중들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어서 A4용지를 채워 뭐라도 써서 출판사에 보내보란 말이야!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가고 또 세월은 흐르고 흘러 또 20년이 지나고 나면 왜 40대에 이걸 하지 않았나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느낀 시간의 체감 속도로 치면, 그 순간은 정말 순식간에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언젠가는> 노래가 좋을까? 그때는 어떤 가사에 꽂히게 될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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