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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un 08. 2022

아빠는 슈퍼히어로

내가 내가 되기까지



20년 전쯤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끼적대던 시절, 이 제목으로 글을 하나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지난 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홈페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이 제목이 떠올라서 다시금 기억을 끄집어 내본다. (백업을 했어야지!)



어린 시절 아빠는 내게 우상이었고, 슈퍼히어로였다. 대단한 일을 하시거나, 엄청난 업적을 이룬, 그런 분은 아니다. 그저 한전에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셨고, 본인의 어린 시절이 가난하여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분이셨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게는 회사에서 공수해오는 각종 A4용지와 사무용품들이 아빠 덕에 항상 넉넉했고(죄송합니다 그 시절 회사 오너분들), 과학 동아와 같은 책은 사보지 않고도 매달 전체를 다 복사해오셔서 편하게 쉬이 볼 수 있었다.(잡지는 원래 흑백인 줄) 모르는 게 있으면 아빠한테 물어보면 언제나 척척 해답이 나왔고, 매년 초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곤충 채집 같은 것을 수준급으로 도와주셔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초등학교 수학 경시 문제로 씨름하고 있던 시계 문제를 아빠와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풀어내어 기뻐했던 기억도 있다. 잘 몰라도 같이 해보자, 함께 시도했고, 포기할 줄 몰랐으며, 뭘 하든 안 되는 건 없었다.



채집왕이던 우리 아빠. 집에도 사슴 벌레가 기어다녔다.



어린 시절, 아빠에게서 안돼! 소리를 거의 들은 기억이 없다. 공부해! 소리도 들은 기억이 없다. 언제나 엄마를 통해 일찍 자라! 는 이야기만 들었던 것 같다. 아침잠이 많았던 중고 시절에도 주말에 오후가 되도록 자고 있어도 엄마 아빠 누구 하나 깨우는 법이 없었다. 해가 질 무렵에야 일어나면 그날 하루가 짧아졌음에 서운해지는 건 나뿐이었다. 아빠는 자녀와의 일상 소통은 엄마를 통해서만 하셨지만, (엄마의 철학이셨던 듯, 잔소리는 엄마만 한다 뭐 이런?) 묵묵히 뒤에서 아들 딸들이 하는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언제나 도와주셨다.



집에 있는 비누에는 항상 비누의 겉 껍데기가 동그랗게 잘린 채 바닥에 붙어 있었다. 비누의 표면에 물이 닿으면서 소진되는 비누를 아껴 쓰기 위한 아빠의 장치였다. 화장지는 항상 한 장, 또는 두장만으로 해결하는 것인 줄 알고 자랐으며, (딸들아 보거라, 휴지는 돌돌 말아 흥청망청 쓰는 것이 아니란다) 치약은 항상 끝부터 가지런히 접혀 있어 남기는 것 없이 꼭꼭 짜서 썼다. 집에는 항상 금붕어와 열대어, 많은 식물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유지하는 유지 비용은 많이 들지 않았다. 어디선가 공수해온 벽돌과 시멘트와 비닐로 직접 어항을 꾸몄고, 어디선가 공수해온 목재들로 화단을 직접 만들었다. 헝그리 정신으로 말미암아 창의적으로 집은 꾸며졌고, 아빠의 손기술은 날로 발전하였으며, 그것이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남김 없이 다 써야해! 휴지는 한장씩만.
뚝딱뚝딱 DIY




놀이에도 크게 돈이 든 일은 없다. 지금도 손주들과 놀아줄 때 목마 태워 놀거나 몸으로 놀거나 사소하게는 주방용품 같은 것으로 놀아주신다. 어린 시절 회사와 연계된 전국의 콘도를 돌아다니며 숱하게 여행 다녔지만 주로 자연과 함께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 들이지 않고 놀아주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은 자명한데, (돈 쓰면 나는 편하지, 풀빌라 넣어놓고 나도 딴짓하고 키즈카페 넣어놓고 핸드폰 보고) 그런 걸 보면 어린 시절 얼마나 아빠가 바지런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이가 무슨 짓을 해도 기다려주었고, 하려고 하는 일에 초치는 법이 없다. 아이가 오후 늦게 잠이 들어도 인위적으로 깨우지 않고 내버려 두고(일상 루틴을 중요시하는 요즘 육아법과는 차이가 있지만 아빠의 육아법에도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징징대지 않는 한 끝까지 그 놀이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어떤 저지레를 하고 있어도!) 지금 손주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과거의 나를 돌보셨던 아빠의 모습까지 짐작해볼 수 있는데, 억지스러움이 없달까,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줄곧 그렇게 하신다. 셋을 키운 노하우였을까. 애들 약 먹이는 것도 여전히 아빠가 제일 잘하는 걸 보면 그 당시 아빠 치고 대단한 육아 왕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중학생쯤부터 아빠가 마냥 슈퍼히어로는 아니구나, 깨달았던 것 같다. 이제는 수학 문제를 물어봐도 해답지를 보고 스스로 해결하는 게 빠르고, 회식한 날이면 인사불성으로 집에 오기도 하는 아빠를 보면서 가끔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던 것 같다. 이상한 고집으로 엄마와 다투시는 날에는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히어로는 이제 없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히어로가 아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 날도 있었다.





그런 저런 날들을 지나 70대가 된 지금의 아빠는, 여전히 묵묵히 우리들 뒤를 봐주신다. 손주들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그날을 위해 고래밥과 엠앤엠을 한가득 사다 놓고, 주식을 하면서 생긴 용돈을 모아 명절이면 따로 더 손주들에게 챙겨주신다. 딸이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딸 대신 손녀의 하원을 도와주시며 짬짬이 스도쿠를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좋은 풍경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아들딸 손주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 한가득 가족 카톡방에 올려주신다. 여전히 말수 적고 무뚝뚝한 아빠이지만, 여전히 묵묵히 우리들의 뒤를 봐주시는 아빠는, 조금 늙고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겐 히어로이다. 아빠, 그래도 술 좀 줄이시죠~? (여전히 딸 말은 안 듣는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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