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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y 26. 2022

어리숙함이 얻는 이득

허술함이 무기


허술하다 : 치밀하지 못하고 엉성하여 빈틈이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허술함에 관대하다. 완벽하지 않음에 인간미를 느끼고 좀 더 친숙하게 대한다. 술을 마시고 나사 풀린 상태에서 좀 더 친해질 수 있듯이, 가끔은 허술함이 인생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거나 관계에 있어 도움이 될 때가 종종 있다. 경험에 비추어 어리숙하고 허술한 나의 면이 인생 전반에 걸쳐 얻은 이득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너 혼자 허술해라, 나는 똑 부러지면서도 세상을 현명하게 살 테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킵하자.)




첫 번째로 생각나는 이득은 바로 중학교 반장 선거다.

요즘 세대는 학급 회장이라고 하나 본데, 라테는 말이야~ 학급의 대표는 '반장'이었단다. 사전적 의미 3번에 나오지. 반장(班長) : 예전에, 교육 기관에서 교실을 한 단위로 하는 반(班)을 대표하여 일을 맡아보던 학생. 공부는 비교적 잘했지만, 뭔가 친구들이 보기에 나사가 하나 빠져 있는 듯 허술해 보였고, 그 누구도 나를 경쟁 상대, 또는 적으로 여기질 않았다. 예전 용어로 '깡년'이랄까, 요즘 말로 일진들조차, 약간 나를 귀여워하며 챙겨줬던 기억이 난다. 칼 단발을 한 키 큰 깡년들도 내가 하는 말이면 왜인지 고깝게 듣지 않고 따라줬다. 애들이 착했다니까.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다. 가끔 외래에 품행 장애 중학생이 올 때면 조금 무서운 느낌인데, 당시에는 그저 외모에 관심 많고 학업에는 무심한, 천성은 나쁘지 않은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선생님 편에만 서 있지 않고 다소 맹한, 내가 부탁하면 그럭저럭 잘 들어줬던 것 같다. 아주 마당발이거나 친한 아이들이 많은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적을 만들지도 않은 탓에, 3년 모두 제법 쉬이 반장이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이득은 바로 시댁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아무것도 몰라요 모드였다. 왜냐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애초에 결혼을 한 것 자체가 전공의 2년 차 때였으니 뭔가를 준비할 시간이라고는 없었다. 요리도 전혀 할 줄 모르고, 집안 일도 엄마가 나중에 결혼하면 다 하게 될 거라며 시킨 적이 없었다. 기본예절은 그저 어른에게 대하는 공손함 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남편이 일하면서 짬짬이 1분가량씩 안부 전화를 하던 것이 결혼 전부터 루틴이었고, 결혼 후에도 남편은 그 루틴을 유지했다. 그리고 나는 그저 가끔 새로운 안부를 전해 듣기만 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며느리였다. 애초에 사람이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기대감이라고는 없이, 어리숙한 며느리로 살아가며 그저 잘 챙김 받고 얻어먹고 그렇게 나는 쉬이 시월드를 살아갔다.


세 번째 이득은 딸 친구 엄마 모임이다.

평소 직업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딱히 숨기는 것도 아니므로 모임이 잦아지고 친해지면 결국에는 모두가 알게 된다. 직업을 알고 나면 약간 색안경을 쓰고 대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와중에 허당끼를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공격을 멈추고 방패를 내려놓고 친근해진다. 어리숙한 내게 이것저것 챙겨주기까지 한다. 일하느라 모르셨을 거 같아서요, 혹은 같은 워킹맘끼리 서로 챙겨야죠! 이것저것 주워듣고 조언을 받으며 모임 내 사람들 간에 적절한 거리 두기를 하면서 지낼 수 있다. 딸 친구 엄마 모임은 시댁만큼이나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수다. 그저 저 엄마는 제 공부만 잘했지 맹한 엄마, 이미지로만 남아도 괜찮다. 정보에 아주 앞서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도움을 요청했을 때 견제받지 않고 쉬이 접근할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 이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브런치가 아닐까 한다.

이것저것 읽다 보면 나 잘났어, 나는 특출 나지, 이런 글을 인기가 없다. 조금은 허술함이라는 무기를 내어 놔야 사람들이 열광한다. 물론 나의 브런치는 많은 구독층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개별 글에 대한 관심도 도찐개찐이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실수나 허술함이 드러난 글이 좀 더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고 느낀다. 다소 어리숙하거나, 혹은 아예 전문적이거나. 그러고 보니 실질적 이득을 본 것은 아직 없네. 맹한 구석이 드러난 글을 하나 써서, 히트를 쳐봐야 이 글이 증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브런치에서 히트란 어떤 의미일까? 라이킷이 적다고 하찮은 글은 아니듯 많다고 반드시 좋은 글은 아니고, 댓글이 많다고 글이 좋다고만은 볼 수 없고, 적다고 별로인 것도 아닌 것이, 메인에 등극한다고 다 훌륭한 글인 것도 아니므로, 아직은 정의하기 힘든 히트의 기준이라지만, 일단 허술함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글을 한번 써보아야겠다. (어떻게?)


허술한 게 좋으니 마냥 허술하셔라 이런 취지의 글은 아니다. 다만,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조금 허술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나쁘다고 생각되는 점도 한 발짝 떼어 놓고 시각을 달리해 보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조금 엉성한 사람이어도 괜찮다. 조금 모자라도 괜찮다. 완벽하게 완벽한 사람은 없다. 조금은 허술한 당신,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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