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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y 15. 2022

내가 가는 미용실

단골이 된 이유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을 끌어야 한다.

일을 잘한다.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내가 일을 잘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굉장히 기획서를 잘 쓰거나,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하거나, 내 능력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는 미용실은 허름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던 곳인데, 알고 보니 단골 지인들이 많이 겹친다.

나는 나를 드러내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여기만 가면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내 머리를 내어주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하게 된다.


나의 미용사는 애가 둘이고 나보다는 동생인 워킹맘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야기를 잘한다. 사람들을 잘 기억하고 머리도 마음에 들게 잘라준다.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그저 머리카락을 맡기면 되니 편하다. 이것저것 많이 묻지도 않고 많이 권하지도 않는다. 뭔가 해보면 어떨까 갈팡질팡하는 내게 시기적절하게 이때 이걸 하는 게 제일 좋겠다며 합리적인 조언을 주신다.


머리를 손질하는 훌륭한 기술을 가졌더라도, 그것만으로 내가 단골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술술 하게 만드는 그 기술,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내 이야기를 하고도 후회하지 않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 기술이 나를 단골로 만들었다. 타고난 것인지,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기술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애를 쓴다고 되는 것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본인은 그 타고난 재능을 인지하고 계실까? 공감 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나신 분이다. 내겐 없는 능력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단골 선생님, 그 사람의 자매, 단골 변호사, 그 사람의 엄마, 단골 의사, 그 사람의 사촌언니, 그 사람의 엄마, 사립초등학교 보내는 엄마 등 직업군도 다양하고 아는 단골도 정말 많다. 헤어 커트를 하면서 해주는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세상의 모든 진리를 대화를 통해 얻어 나가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굳이 몰라도 될 과거사부터, 엄마 이야기까지 왜 술술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이야기하다 보면 그렇게 되고 만다. 침묵이 불편해서 하는 아무 말과는 다르다. 뭔가 대화의 기술이 있는 것 같다.


이쯤 되니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줄어들고 예약이 쉬이 잡히면 오히려 걱정이 된다. 부부가 같이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망하기라도 하는 거 아닌가, 애가 둘이라는데 요즘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어느 날은 인근에 유행하는 소금 커피 두 잔을 사들고 미용실로 향했다. 커피 두 잔 값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다.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단골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머리를 맡기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의 천부적인 스킬이 다소 부족하다면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곳에서 배워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케팅이나 상술 등의 노하우를 빌어 보완하는 것이다. 화미주 등의 많은 분점이 있는 미용실이 그러하다. 단골이 스스로 단골을 정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득이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굉장히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음에 아주 쏙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망하지도 않는다. 한번 다회권을 끊어 놓으면 소모할 때까지 부담 없이 다니면 되지만, 그것이 끝나갈 즈음 다른 상술을 권장받는 순간이 오고 또 어느새 다른 데는 가지도 못하고 발목 잡힌다. 아무 대화를 하지 않고 그저 입 다물고 있다 와도 이상하지 않지만, 가끔 이야기하고 싶어도 말이 겉돌아 불편하기도 하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기도 하지. 상업적이지 않아서 편하고 좋고 단골로 만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상업적으로도 잘되길 바라는 이 마음이란. 그러면서도 내가 예약을 잡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만 잘됐으면 싶고. 이기적이기까지. 어린 시절의 나는 대형 브랜드에 다녔지만 지금은 단골 허름한 미용실에 다닌다. 그리고 그게 편하고 좋은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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