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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y 29. 2022

꿈이 없는 소녀

꿈 많은 중년



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렸을 때 어른들이 내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 싫었다. 왜냐하면 딱히 원하는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 학기 매 학년마다 장래 희망을 적는 칸은 있었고, 나는 뭐가 뭔지도 잘 모르는데 자꾸 뭔가 꿈을 꾸라고 종용하는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기입했던 기억에 남는 첫 장래 희망은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 옆집에서 살 거예요, 했다고 한다. 그런 나를, 진짜 엄마는 조금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셨던 것도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꿈을 이루었고, 지금의 집에 이사 오기 전까지 6년의 세월을 엄마와 한 아파트, 다른 층에서 살아 보기도 했다. 내가 말한 모든 꿈을 나는 이미 30대에 이뤄냈다.


의사는 왜 되었냐고? 그것도 참 신기한 게, 다들 그럴싸한 이유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었다. 엄마가 아파서 내가 의사가 되어 치료해 주고 싶었다는 둥, 동생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둥, 국경 없는 의사회를 꿈꾸며 세상에 일말의 희망이 되고자 했다는 둥. 많고 많은 숭고하고 고귀한 이유들을 들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나? 허준 드라마를 보고 나서 한의대를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의대를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다. 엄마 말은 들어야지. 그리고 사실 나 때는 한의대가 의대보다 성적이 더 좋아야 갈 수 있었다.



청진기 하면 리트만이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를 물어보던, 어릴 때 싫어했던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아이에게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를 물어보며, 아이의 답을 내심 기대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도 싫어했던 질문이었기에 내심 나의 기대를 내비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오리나 타조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하하, 엄마가 더 나은 상황 아니야?)


내가 되고 싶다고? 어떻게? 이미지 출처 : pixabay




어린 시절 실망 어린 눈길을 읽었던 그 아이(나)는, 이후로는 언니가 쓴 장래 희망을 따라 쓰기 시작했다. 언니가 어느 날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장래희망 칸에 과학자가 뭔지도 모르면서 따라 썼다. 어느 날 언니가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나는 또 의사가 뭐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따라 썼다. 친구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 기억해 뒀다가 다음 장래희망에 기입하기도 하였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어른들의 실망 어린 눈길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셋째의 눈치로 쓴 의미 없는 장래 희망들이었다.


중학교 때도 줄곧 의미 없는 장래 희망을 써냈던 나를 돌이켜 보면,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고 우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우주 비행사라고 적확하게 본인의 꿈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오리는 잊었다!) 성향의 차이일수도 있겠지만, 아이는 호오가 분명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이미 수집할 줄 알고,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주며 응원해주리라 다짐했다. 꿈이 산산조각 나지 않도록, 그 길이 힘들고 어렵고 지난할지라도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어졌다.


멋지다 우리 딸, 엄마 우주여행시켜줘야 해. 이미지 출처 : pixabay



꿈이 없던 소녀는, 살아가는 동안 꿈이 많은 중년이 되었다. 초등학교(그 시절 국민학교) 졸업 앨범을 보면, 아이의 눈빛에는 딱히 총기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꿈 많은 중년이 되어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지금 눈빛은 과연 초롱초롱할까?) 주변의 기대도 없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고 알아가고, 더 좋은 것을 취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내게 소중하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이지, 남들이 생각하는 의미 있는 가치와는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것일지도 모르고,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것일지 모르나, 내게는 중요한 것, 그런 것들을 꿈꾼다. 지금은 아무도, 나의 꿈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설사 말을 해도 실망 어린 눈길을 주지 않는다.


꿈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많아서 한참 걸릴 것이니 중략하고, (게다가 아무도 관심 없어) 생각나는 몇 개만 써보면, 일생에 책 한 권은 내어보기, 여행 다니면서 어반 스케치 그려보기, 전원주택 지어서 원 없이 식물과 개 키워보기, 해외에 거주하면서 1-2년씩 다른 새로운 문화 접해보기, 건물주 되기 이런 것들이다. 일부 특히 속물적인 것들 위주로 열거해보았다. (중략한다더니 다 썼잖아!) 그리고 조금씩 구체적으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10년 이내에 두 가지는 해낼 것이고, 20년 이내에 나머지 것들 중 몇 가지는 실현해보고 싶다.


2018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작, 기장 웨이브온과 김해 멋진 할아버지집



내 또래 엄마들 중에는 자식이 잘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본인을 희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내게도 자식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물론 있다. 하지만 그건 본인의 꿈이어야지, 나는 조력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기적인 발상일 수도 있고, 자식에게 본인의 수십 세월을 희생하셨던 나의 엄마를 돌이켜 보면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임이 자명하기에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조금 들지만, 내 몫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꿈도 지켜가면서 아이들의 꿈도 도와주는 엄마이고 싶다. 적어도 내 아이가, 대학 잘 가야지!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끝없이 달려갔는데, 목표를 이뤄내자마자 모든 에너지를 잃고 마는 그런 상태는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은 길고, 나의 꿈은 지금도 진행형이므로, 얼마든지 그 과정 속에서 보람을 느끼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만 잘 갔다고 모든 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이런 역량들을 키워갔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브런치에는 글쓰기 출간 소식 퇴사 꿈 이런 이야기가 주를 이루다 보니, 자꾸만 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또 글을 쓰게 된다. 어떻게 갑자기 이 제목을 떠올리게 된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꿈을 꾸고 살았으면 좋겠다. 꿈을 떠올리며 행복해하고 그 과정을 즐기면 좋겠다. 전에 외래에 찾은 중학생 하나가 아무것도 난 잘하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꿈도 없어요, 하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나이가 드니 자꾸 오지랖이 늘어간다. 다음 외래 방문 때 예쁘게 화장을 잘하고 왔기에, 꾸미는 것을 잘하네 이야기해줬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 뭐라도 찾아보면 조금은 나온다. 그것을 갈고닦고 꿈을 꿨으면 한다. 나중에 그 아이가 또 외래에 왔을 때, 화장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재밌어요 하며 웃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서랍이 비어 가고 있어! 다음 주는 독박 외래 봐야 해서 바쁠 텐데 큰일이야!    카페 가서   쓰고 올게! 남편에게 둘째를 던져두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이 뚝딱, 하나 완성되었다. 뿌듯하다. 아무도 몰라줄지언정, 나는 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일말의 거름이 되어줄 것임을. 그리고  과정은 힘들지만 뿌듯하다. 오늘의 짜증을 내려두고 오롯이 글에 집중하는 시간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누구나 꿈을   있다. 그리고  꿈은 어떤 종류건 하찮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릴  꿈인 '엄마' 얼마나 위대한 꿈인가.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자. 그리고 계속해서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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