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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Sep 13. 2022

알 만한 사람들이 더 하네


곰 같은 의사 B의 정직한 진료?

병원에서 꽤 높은 직위까지 오른 의사 A는 어느 날 어지럼을 느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경과 전문의 B는 어지럽다고 내원한 A를 성심성의껏 진료한다. B 의사는 곰 같은 성향을 가졌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며 정직한 진료를 지향한다. 병원의 이익을 고려하되, 이익만을 좇지는 않는다. 진료의 기본은 환자의 병력이며, 필요한 검사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가치에 맞게 B는 수가를 정당히 매기고, 검사자에 대한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 B 개인의 평판이나 칭찬, 감사의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떠나, 정당하게 값을 매겼다.


당연한 일에 투덜거린 A


처음에 B는 A가 끝도 없이 검사의 불편함에 대해 투덜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병원 시스템을 운운하며, 그 검사를 받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불편에 대해 꽤 긴 시간 이야기했다. 그래도 자기가 몸 담은 병원의 시스템인데 왜 이렇게까지 '까는' 걸까? 한참을 듣고 나서야 알아챘다. 어쩌면 무료로 검사를 해주지 않아서일지도 몰라. 만약 B가 프리로 해줬거나 일부의 검사 비용으로 풀 검사를 진행했더라면 그렇게까지 불만족을 표하지는 않았을 거야. 처음에는 심증이었을 뿐이지만 나중에 다른 과장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A의 특이하고도 불편한 행동은 다른 과장님들에게도 꽤 유명했던 모양이다. 대놓고 혜택을 달라고 하기는 명분이 없고 알아서 눈치껏 대접해주길 바랐지만 그렇게 해주지 않아 투덜댔던 것.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고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건만, 꼬장꼬장하게 읽혀버린 못난 어른의 모습이었다. 저렇게 늙어가지 말아야지. 정당한 노동력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거나, 정당치 못한 특혜를 대접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어쩌면 B의 오해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검사가 불편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말로 오해였으면 좋겠다고 B는 생각했다.


4년 후 새벽 2시에 A는,

당시의 인연은 4년이 지난 후 이어졌다. 새벽에  A의 가족이 발이 쳐져서 응급실을 내원하였다. 시간은 새벽 두 시였다. 일반적으로 발목 처짐의 경우 비골 신경 마비가 가장 흔하다. 비골 신경 마비의 경우 신경 전도 검사가 필요하며, 신경의 일시적인 압박에 의해 발생한다. 검사는 외래 검사를 통해 진행된다. 뇌경색 등의 감별 진단을 위해 뇌 MRI를 촬영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 후 필요한 응급 처치를 하고 외래 예약을 잡는다. 새벽 두 시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쿨쿨 자고 있을 시간이다. 당장 시술하거나 혈전 용해제를 쓰는 것이 아닌 이상 굳이 그 시간에 타과 전문의와 면담이나 상의를 하지는 않는다. 응급실에서 전화가 울렸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B는, 현 상황을 이해하고 현재 취해야 할 처치와 외래 예약을 알렸다. 이어지는 새벽 두 시에 이루어진 보호자 A와의 전화 면담. 응급실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부탁인지 강제인지 지시인지 알 수 없는 거역하기 힘든 어떤 것이었겠지. 잠이 달아났다. 한참 동안의 면담이 끝나고 차후 외래에서 뵙기로 했다. B의 진료가 없는 시간에만 하필이면 그들은 시간이 된다 하였다. 그들의 스케줄에 맞춰 진료가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B는 조치를 취한다. 왜 그랬을까?



나의 작은 행동 하나도 어쩌면 갑질일지도 모른다.

어딜 가나 갑질 아닌 갑질은 존재한다.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 어쩌면 B가 진료과장이라는 이유로 원무과 앞 대기표를 뽑아 기다리지 않고 전화 한 통에 본인 아이의 접수를 쉬이 해버릴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갑질일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자의 특권 같은 걸로 생각하면 될까? 전화 한 통에 다른 사람들의 순번을 새치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A는 갑질을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B의 작은 오해일지도 모른다. 아마 높은 직위가 아니었더라도 A는 분명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더욱 의식적인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원칙대로 진료를 보고, 하던 대로 검사를 받고, 상대가 무리하여 자신에게 맞추려 할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배려 있는 행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칙대로 하는 것이 과한 배려로 인한 불편도 없앨 수 있다. 과한 물질적 보상도 마음의 부담이고, 과한 배려나 무리한 스케줄의 변경 역시 결국 어느 한쪽의 희생에서 비롯된다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애초에 서로의 원칙대로 하는 것이 결국 가장 큰 배려인 셈이다. '배려'의 사전적 의미를 본다.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참 어렵다. 마음을 쓴다는 건 뭘까? 나는 그들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마음을 썼으니 충분한 배려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배려를 배려로 받아들였을까? 배려받기도, 배려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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