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곰탱이는 횡문근 융해증이 왔지
미련한 곰탱이과 징징대는 토끼가 있다. 그들은 마흔 넘어 생존 운동을 해야겠다 싶었고, 의지가 박약하니 스스로 운동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토끼가 마흔이 되던 해에, 필라테스 1:1을 비싼 돈을 주고 끊었다. 생애 처음 하는 필라테스다. 조금씩 체형 교정과 기구에 적응되어 갈 무렵, 목표가 없던 그들에게 운태기가 찾아왔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에 토끼의 눈에 들어온 헬스장. 토끼는 생각했다. 그래, 나에게는 근력이 필요해. 필라테스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 근육을 만들자!
미련한 곰탱이는 징징대는 토끼가 PT를 끊겠다고 하자, 대뜸 자기도 같이 하겠다고 한다. 아니, 나만 돈을 써도 모자란 판에, 너까지? 그래도 의지를 다지니 대견하구나, 같이 건강한 노후 생활을 꿈꿔보자, 좋은 취지로 둘 다 등록을 하였다. 새해 들어 제일 많이 쓴 돈이 운동이라니. 학원 하나 안 다니는 아이에게 감사했다. 너에게 들어갈 학원비가 엄마 아빠의 운동 등록에 쓰였다고는 말 못 하지. 하지만 고맙다, 아이야.
징징대는 토끼는 이완만 잘한다. 필라테스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면, 힘을 잘 못쓰고 근 지구력이 약하다 하였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현대인과는 다소 이질적이다 하였다. 그렇다고 유연하지도 않은 것이 함정이지만. 이완을 주로 하던 토끼는 힘쓰는 동작에서는 징징대기 십상이었다. 유산소도 오래 지속하기 어려웠다. 난이도 하의 필라테스 생활이 이어졌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해.
변화의 시작은 웨이트이다. 중량을 다루는 운동을 하며 근육을 붙여가 보자. 하지만 생애 첫 헬스장 기구인지라 두려움이 앞섰다. 처음 만난 트레이너에게 '난 삼두 등의 근육이 기능을 거의 못하는 사람이다, 살살하셔야 할 것이다' 말씀드렸다. 트레이너가 말했다. 자 뒤로 팔 들어보세요. 아? 번쩍. 네, 삼두가 잘 기능하고 있네요. 하하, 하하하. 토끼의 징징을 알아채셨을까. 웃으며 무슨 동작이든 아주 쉬운 듯 이야기한다. 일단 맨몸 기초부터 다져봅시다. 이어지는 스쾃 종류만 몇 개나 있는 건지. 아 나의 불타는 앞벅지여, 무거워진 내 다리여.
미련한 곰탱이는 한때 PT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한때라는 것이, 10년도 넘은 시절이건만, 자만 아닌 자만을 했던 곰탱이는 시키는 족족 모든 동작을 수행해 냈다. 곰탱이의 트레이너는 그저 시키면 꾸역꾸역 해내는 곰탱이의 미련함을 인지하지 못한 채, 체대 출신이시냐 물으며 계속 시켜댔다. 징징대는 토끼가 징징대며 스쾃, 런지, 팔 벌려 뛰기, 버피테스트, 마운틴클라이머 정도로 첫날 운동을 끝냈다면, 미련한 곰탱이는 각종 기구들을 섭렵하고 뭔가 나사 하나 풀려버린 로봇처럼 어기적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다음 날, 미련한 곰탱이는 팔을 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미련한 곰탱이는 콜라색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어기적거리며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근육통을 호소하던 미련한 곰탱이는 결국, 근육 세포에서 나오는 크레아티닌 키나아제라는 근육 효소의 수치가 4만에 이르러 입원을 하게 되었다. 주치의는 징징대는 토끼. 수액을 때려 붓고 물을 엄청나게 마시고 나서야 수치는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가끔 횡문근 융해증 환자를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운동을 했길래 저 지경이 되는가 싶었는데, 그 환자가 바로 남편이라니. 놀라웠다.
건강해지려고 시작한 운동이 건강을 해치는 꼴이란. 징징대는 토끼는 미련한 곰탱이의 미련함에 혀를 내두르며 오늘도 '몸 사리며' 운동한다. 스트레칭은 필수지. 건강한 노후를 위하여, 오늘도 생존 운동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