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로그림 노운 May 09. 2023

손에 생긴 굳은살

매일 그만둬야지 결심하다가 어느덧 그날이



눈을 떴다.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식단까지 하려니 몸에 기운이 없다. 건강해지려고 시작했는데 본질을 잃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면서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심기일전하여 작은 방으로 털래털래 걸어간다. 아이들이 깨면 안 될 텐데, 걱정이 되면서도 눈을 뜰 수가 없다. 간단히 어깨 돌리기 스트레칭 정도 하고 눈은 반쯤 감은 상태로 로잉머신 앞에 앉았다. 30분 설정 후 불도 안 켠 채, 그저 로잉 머신을 당긴다. 세게 잡지 말라는 주의가 있어도 당기면 압력이 생기고, 손가락 안쪽에는 굳은살이 생긴다.


100회 정도는 자면서 당기느라 무념무상, 비몽사몽이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남편이 공복 유산소 운동을 하러 오기 전에, 30분을 후딱 채워야 한다. 내게 주어진 30분 동안 생각을 많이 하고 호흡이 무너지면 힘들어 더 못한다. 그냥 해야 하는 일이거니, 하고 무심히 당긴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지루해질 즈음 다음 100회 정도는 광배근에 집중해 본다. 또 100회 정도는 둔근에 집중한다. 또 다음 100회는 그립을 오버핸드로 잡아보고 내로우 또는 와이드로 변경하여 등근육의 미세한 자극 차이를 느껴본다. 또 100회 정도는 복근에도 집중해 본다. 그렇게 다양한 변화를 주면서 대략 700회를 셀 때쯤이 되면 5분이 채 남지 않는다. 그러면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정신 승리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힘이 들어도 이제 곧 끝난다는 마음으로 당기면 또 그게 해내진다. 그렇게 공복 유산소 운동 30분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하면 250kcal 정도를 태울 수 있다. 달달한 음료수 홀랑 쉬이 마시고 생긴 열량을 태워버리려면 이토록 힘든 30분을 인내해야 한다. 놀라운 비효율이다.




비올라를 배울 때 그랬다. 손에 생긴 굳은살이 그렇게 반갑고도 대견했다. 연주일이 다가옴에 따라 단단해지는 손가락 굳은살을 보면서, 연습량을 떠올리고 흐뭇해했다. 조금 더 정확해지는 음정과 쌓여가는 기술이 굳은살의 정도와 맞먹었다. 뭐 그깟 30분 운동 하나에, 과거 회상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어쨌든 그랬다. 연주회 날이 되면 굳은살은 최고조로 딱딱해지고 감각이 아둔해지는 지경이 되면서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연주회 이후에는 굳은살이 사라지고 살은 다시 말랑해지지만, 한층 업그레이드된 실력이 굳은살과 함께 도망가버리지는 않는다. 운동도 '가역성의 원리'에 따라 아예 접어버린다면 다시 예전 몸으로 돌아가겠지만, 꾸준히 조금씩 이어간다면 반복성의 원리에 따라 기능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는 5개월 만에 내원한 환자가 얼굴이 왜 이리 축났냐며, 건강 잘 챙기라며 손을 잡아주고 갔다. 같은 방에 있던 조무사도 운동 시작 후 2주쯤 지나고 나서는 얼굴에 혈색이 돌고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 보인다 하였다. 정말이다. 실제로 너무 힘들다. 이것은 체지방을 줄이려는 공복 유산소 운동과 식단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뱃살은 결국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에 무너지면 영원히 뱃살과는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왜 뱃살은 가장 마지막인가, 왜 남는 탄수화물은 유독 특히, 뱃살의 지방으로 잘 저장되는가. 원망스러운 인체의 신비이지만, 일단 받아들이자.



pixabay에 뱃살로 검색하니 이게 나왔다. 맛있겠다.



그냥 뱃살과 함께 편히 살아가거나, 끝까지 버텨내어 체지방을 걷어내고 다시 시작하거나. 마흔이 넘은 현시점에 나는 후자를 택했다. 조금 더 젊었을 때 했더라면 조금 더 쉬웠을 텐데. 어쨌든 지금이 남은 내 생에서 가장 젊으니. 한 번쯤은 이 지긋지긋한 십 년 묵은 뱃살을 없애고 싶다. 십 년 세월의 무게가 단 12주 만에 사라질 리는 없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없애 나가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손에 굳은살이 생겨나간다. 목표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왜 이래야 하나 싶으면서도 말 잘 듣는 우리들은, 아마도 결국 대망의 그날까지 하라 하는 대로 다 하고 말 것이다. 힘들어 죽겠다면서도 꾸역꾸역 하고 있는 내가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다시는 하기 싫고 그런 심정이다. 그 와중에 최저 몸무게를 찍으면서 오히려 건강이 걱정되기까지 한 이 상황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본다.


이전 12화 집에 짐볼이 있었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