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의 세계
교사들은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의 데이터가 쌓이고 쌓인다. 하여, 아이들의 인상에서 어떤 성향의 아이일지 예측이 되기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떤 캐릭터의 아이라고 단정을 짓게 되기도 한다. 물론 보기 좋게 그런 예상을 빗나가기도 하지만.
준현이는 도통 특징지을 수 없는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도 못하는 아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사회성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다고도 잘 거스른다고도 할 수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직도 초등학생 티가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준현이는 선생님의 말에 맞장구도 잘 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여 맛깔나게 들려주었으며 상대의 말을 아주 훌륭하게 경청하였다. 가끔 역지사지하여 교사의 마음을 잘 헤아렸기 때문에 어른인 듯 느껴질 때가 있었다. 대화가 잘 통하고 수업의 흐름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나의 교과인 국어를 잘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그런데 학기 초 자기소개서라든가 진로 희망서 등을 잘 가져오지 않고 몇 번을 독촉해야 듬성듬성 써서 제출하였는데, 준현이는 듣기-말하기가 잘 되는 반면에 읽기-쓰기가 잘 안 되는 아니, 쓰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아이였다.
준현이는 육지에서 살다 아버지, 형과 함께 초등학교 3학년 때 제주도로 내려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하시는 일 때문에 육지에 머물러 계시고 가끔 방학 때 올라간다고 하였다. 상담 때 혹시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행정실에서 전해받은 정보에 의하면 준현이는 한부모가정과 기초수급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준현이의 아버지는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그게 늦게 끝나서인지, 아침에 밭에 나가서인지 몰라도 아침에 준현이를 케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준현이 형은 고등학생이라 아침 일찍 등교하고 나면, 준현이를 깨워줄 사람이 없이 늦잠을 자며 지각을 하기 일쑤였다. 수업 시간 전까지 아무런 이유 없이 등교하지 않으면 규정에 의해 미인정 결과 처리가 되고 이것은 고등학교 입학 시 내신성적에 반영이 되어 불리한 결과를 낳았다. 처음 몇 번 지각하였을 때는 아이와 아버지한테 번갈아 전화를 하며 한 시라도 빨리 오도록 지속적으로 통화하였으나 나중에는 아예 전화가 안 되는 때도 많았다. 그래서 담임으로서 애가 탄 나는, 언제부터인가 출근길에 어느 오름을 지날 때마다 준현이한테 전화를 해 규칙적인 모닝콜을 하게 되었다. 지금 일어나야 지각하지 않고 학교에 올 수 있어하고.
비록 지각을 자주 하긴 했지만, 준현이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티키타카가 잘 되어 교우관계도 원만할 거 같았다. 물론 아이들과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여학생들과는 아주 잘 지냈지만, 반에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이 겉도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우리 반에 개성이 넘치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준현이는 반에 어울리는 친구가 없었고 언제부터인가는 2학년 형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쪽 교실을 서성이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반 친구와 점심시간에 다툼이 일어 두어 번 지도한 적이 있는 한편, 아이들 사이의 싸움을 구경하러 갔다가 오히려 본인과 시비가 붙어 다른 반 아이의 신고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준현이는 그 아이와 싸움을 피하려다 운동화 한 짝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것을 끝내 다시 찾을 수 없었다.
1년의 학교생활 중 가장 사건사고가 많다는 6월. 준현이는 반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한 번씩 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한 번은 수학 시간에 다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가 자신이 싫어하는 별명을 불러 욕을 하며 책상을 엎고 교실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한 번은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자신이 어렸을 때 찍어 올렸던 동영상을 찾아봤다는 이유로 교실 공기청정기를 엎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이런 여러 사건에 준현이를 달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화를 내며 지도하기도 하고, 학생부장 선생님과 협의하여 규칙에 따라 엄중한다고 협박하기도 하며 여러 방식으로 이끌었다. 보통 방학이 지나면 삐뚤어진 아이들은 더욱 타락 탈선하는 경우가 있기에 준현이는 여름방학 때 크게 일탈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여름방학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