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이야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요즘은 아이를 키우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고, 낳더라도 하나 낳는 가정이 참 많다. 그러나 나에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제2의 인생을 산다는 것과 같았다. 군의관 때 아이와 함께 놀러 나가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아이가 점점 커가는 것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 기구 위에 서 있다가 보면, 문득 내가 놀이터에서 논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것은 아이 덕분이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놀고 아이를 양육하며 그때의 나를 그려보곤 했다.
정신 분석이론에 따르면 환자가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을 대상관계 이론이라고 한다. 나는 이러한 대상관계가 비단 환자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와 크게 다른 삶을 살지 않는다. 그것이 유전의 영향이던 환경의 영향이던, 부모의 삶은 아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를 역설적으로 살펴보면, 부모 역시 아이를 통해 자신을 본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자신도 이렇게 자랐을 것을 인지한다. 부모님의 고생을 알게 된다. 아이를 교육하며 자신이 어렵게 공부하던 과거를 돌아본다. 이러한 예처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잊고 있었던 자신의 어린 날들을 회고할 수 있다. 물론 예전의 삶과 현대의 삶에는 간극이 꽤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발전된 기술과 환경 이전에 우리는 인간의 몸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 느낄 수 있는 핵심 감정들과 경험들은 크게 맥락을 달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값진 체험이며, 왜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인지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또 하나의 나, 나는 아이를 보며 3인칭 관점으로 어릴 적 나를 본다. 아이와 함께하는 제2의 인생 뒤에는 또 어떤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또한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Here and now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주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혹은 지금 당장 위협이 되지 않을 걱정거리에 정신이 빼앗겨 있곤 하는데, 애를 돌보면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Here and now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어렵다면 롤플레잉 게임을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의 인생을 RPG 게임에 비유하자면 Here and now는 게임을 즐기는 그 순간이다. 아름다운 그래픽을 보고 사냥하며 타격감도 맛보고 사운드에 감탄하고 이런 것들 말이다. 반면 Here and now를 저해하는 불안이나 스마트폰 같은 요소들은 게임을 하긴 하는데 맨날 알트+탭 하고 다른 작업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임은 돌아가긴 하지만 게임을 즐겼다는 느낌은 적다. Here and now 했는지는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된다. 기억력이 많이 손상되지 않은 이상 오늘 하루의 순간순간이 잘 떠올라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일터에서의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퇴근하자마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기억에 잘 남았다. 아이와 함께했던 순간들. 아이가 공놀이하는 것을 지켜보고,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고, 또 그게 질려서 공을 가지고 와서 놀고, 마지막으로 풍선을 가져와서 또 노는 장면들. 그리고선 벤치에 함께 앉아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하고, 산책하며 아이가 이끄는 대로 가고, 문득 날씨가 아이가 놀기에 좋고 오늘의 바람과 우리를 둘러싼 자연, 그 모든 것이 놀기에 완벽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도 있었다. 집에 와서는 아이와 함께 목욕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유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 춤추고 아이에게 몸으로 놀이기구를 태워주는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이 모든 것을 기억나고 의미 있게 해주는 아이에게 감사하다. 아마 나 혼자였으면 어려웠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