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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온실 Oct 10. 2024

허씨의 네 번째 정신과 방문기

10화

 허씨는 그렇게 일주일을 또 허송세월 하며 보냈다. 그리고 진료실에 다시 방문했다.      

 “숙제 못했어요.”

 “허OO님 선수를 치시네요. 어떤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와요. 제가 요즘 뭘 많이 체험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방구석에서 인터넷으로 뒤지고 있자니 현타 오고 잘 모르겠고. 밖에 나가기는 귀찮고요.”

 “그럤군요. 그럼 이 친구가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안 그래도 허OO님께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교재가 있거든요.”

 “이게 뭐죠?”

 “이건 Q and A to me라고, 허 OO님처럼 자기 탐색이 낯선 분들께 권유드리는 교재? 같은 거예요.”

 “와 무슨 질문이 이렇게 많죠?”

 “이게 다 하나하나 좋은 질문들이에요. 허 OO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랍니다.”

 “한 번 해볼게요. 근데 이런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요?”

 “다른 방법들도 있지요. 알려드릴까요?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이 질문지 하는 것보다 더 어렵나요?”

 “물론이죠. 질문지는 한 번 앉아서 하면 몇 시간이면 되지만, 다른 과제들은 다 계속해서 꾸준히 해야 하는 것들이거든요.”

 “아. 꾸준히... 성실해야 돼서 어렵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선생님, 그냥 알려주세요. 제가 하든 안 하든 그냥 알아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러면 알려드릴게요. 일단 이 과제를 최우선으로 하고 지금 말씀드리는 건 한 번 시도는 해보세요. 첫째는 일기 쓰기예요.”

 “일기 쓰기요? 그게 무슨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죠?”

 “일기에는 허OO님이 하루에 겪은 많은 일들과 그에 대한 감정이 적혀있어요. 그 일기를 쓰면서 때때로 종합해 봐요. 내가 하루 중 어떤 일을 할 때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그럼 자연스럽게 기분 나쁜 일들은 피하게 되고, 좋은 일들로 집중할 수 있죠.”

 “확실히 여러 날치를 모아서 보면 그럴 수 있긴 하겠네요.”

 “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다른 하나는 뭐죠?”

 “명상이에요.”

 “명상요? 그 앉아서 눈감고 하는 그거요?”

 “맞아요.”

 “그게 제가 좋아하는 걸 알려주나요?”

 “명상은 무언가 알려주진 않지만 좋은 자기 탐색의 시간이에요. 명상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때로는 마음속 말들을 들을 수 있답니다.”

 “명상은 너무 낯설어서 하기 힘들 것 같아요. 일기는 어렸을 때 써봤는데.”

 “그렇죠. 명상이 낯설다면 요즘 유튜브에 가이드해주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요가도 명상의 일종이랍니다.”

 “요가가요?” “네. 요즘은 남성분들도 많이 하잖아요.”

 “네 저도 예전에 경험해 본 적이 있긴 한데 그게 명상이었다니. 어쩐지 잡생각이 좀 없어지는 것 같기는 했어요. 몇 번 해보진 않았지만.”

 “맞아요. 그렇게 잡생각이 없어지다 보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죠.”

 “마음의 소리라니 뭔가 웃기네요. 하여튼 이것도 생각나면 한 번 해볼게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하시고 오늘 너무 많은 숙제를 드린 것 같은데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네.”


 진료실을 나오며 허씨는 뭔가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예전에 막연히 뜬구름 잡는 느낌으로 자신의 꿈을 그려보는 것은 어려웠는데, 그렇게 자신을 도와주는 교재를 하고 보니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질문들에 답하면서 조금씩 허씨는 자신에 대해 알아갔다. 내가 어떨 때 기분이 좋은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허씨는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워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과정은 매우 어려웠다. 관성은 무서운 것이었다. 몸이 편한 것이 좋았다. 하지만 하루에 몇 번씩 실천하는지 일기를 적다 보니 그런 관성도 조금씩 이겨나갈 수 있었다. 일기를 적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지만, 또한 무엇을 실천했는지 돌아보는 반성일기도 되어주었다. 허씨는 자신이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괜찮아졌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의 2주마다 한 번씩 면담도 허 씨에게 지지가 되어 주었다. 부모님이 주지 못하는 지지를 의사 선생님은 따뜻하게 주는 것 같았다. 허씨는 뭔가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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