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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온실 Oct 14. 2024

허씨의 다섯 번째 정신과 방문기

11화

하지만 숙제 중에 명상은 쉽지 않았다. 몇 번 시도는 해 봤지만 잡생각이 너무 났다. 그런 허씨를 정신과 선생님은 천천히 해도 된다고 지지해 주었다. 허씨는 그런 지지에 힘입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명상하기에 도전했다. 어느덧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 번 실패하고, 또 3일 뒤에 시도하고, 이렇게 3번을 거듭한 끝에 명상하기를 습관화하는 데 성공했다. 

 명상은 정신과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10분 아침 명상으로 했다. 유튜브에 널려있는 가이드 명상 중 가장 짧은 편에 속해서 집중하기가 그나마 수월했다. 집중이 너무 어려울 때는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식대로 어떤 잡생각이 떠오르는지 관찰하려고 했다. 주로 돈에 대한 생각, 주식, 코인 이런 생각. 지금 나에 대한 생각. 나의 안 좋은 처지에 대한 생각. 회사도 없고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생각. 그리고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 예쁜 여자를 사귀어서 가정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 거의 그런 생각들이었다. 그렇게 명상을 한 지 3개월쯤 되자 허씨는 자신의 내면을 정신과 선생님에게 비교적 수월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     


 “선생님 저는 왜 그런 생각들을 할까요.”

 “어떤 생각들이요?” 

 “명상을 하다 보면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있어요. 돈을 벌어야 된다는 생각이나, 예쁜 여자를 만나서 가정을 꾸려야 된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런 모습이 허OO님이 원하는 모습인가요?”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쨌건 저의 마음은 그런, 지금은 되기 힘든 모습들을 자꾸 제시하면서 저를 불안하게 해요. 지금 저는 직장도 없고 패배자 같은 모습인데, 그렇게 명상 중에 제가 닿을 수 없는 모습들이, 지금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자꾸 떠오르니까 괴로워요.”

 “많이 괴롭군요. 그러면 이번 시간에는 그런 생각들이 왜 나는지 한 번 같이 알아보도록 해요. 우선 그런 생각들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괴로움이나 불안 외에 또 다른 감정이 있나요?”

 “음. 제가 성공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요. 빨리 이루어야 하는데, 조급함?”

 “성공을 이루어야 하는 조급함이 있군요.”

 “네.”

 “그런 성공을 이루면, 그러니까 돈이나 예쁜 여자 측면에서 성공을 이루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뿌듯함? 남들이 날 알아봐 줄 것 같은 기분? 아 이번 생에 잘 살았구나 그런.”

 “남들이 알아봐 줄 것 같은 기분이요?”

 “네. 뭔가 인정받는 것 같고.”

 “그러면, 성공하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요?”

 “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냥 패배자의 인생이고.”

 “그렇군요. 인생이 인정받거나, 패배하거나 둘 중 하나네요.”

 “맞아요. 그냥 그렇게 패배자가 되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버림받을 것 같은 기분도 드네요.”

 “그렇군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이 자꾸 떠오르는 거였군요.”

 “맞아요. 실제로는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서 가족이 저를 패배자 취급하거나 어디 갖다 버리거나 그러지도 않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그런 기분이 드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도 오늘 여기까지 생각한 것만 해도 대단해요. 이런 기분이 자꾸 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해요.”

 “네.”

 “어떤 기분이 들 때 그 기분의 정체를 아는 것만으로도 그 기분이 해소되는 것이 있으니까, 그 원인을 모른다고 해서 너무 낙담하지는 말고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네 안녕히 계세요.”     


 허씨는 진료실을 나서면서 그날따라 묘하게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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